잊기 전에 쓰는 출산 일지 1 - 수술 전
아기가 태어난 지 3 주차되는 날들이다.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해 며칠에 걸쳐 쓰고 있다. 아기가 태어난 날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보니 36주가 흘렀고 아기는 계속 하늘을 보고 있었다. 32주 차 사쥬팜과 (*조산사 혹은 산파) 마지막 초음파를 봤을 때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한 달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침도 맞아보고 임산부 전문 물리치료사에게도 가봤다. 일이 끝나자마자 허리 밑에 베개를 쌓아 올려 'Pont indien'이라는 자세도 해보고 아기 돌리는 요가도 따라 해봤다. 그러나 36주 차에 다시 본 초음파에서 아기는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였다. 사실 어느 정도 직감은 했다. 오른쪽 윗배를 만졌을 때 늘 만져지던 딱딱한 부위는 머리였고 오른쪽 아랫배는 허리-엉덩이 부분이었다. 몇 주간 늘 똑같은 부위에서 오는 태동과 딸꾹질 등 아가는 움직이기 싫다는 의지를 내세웠다. 마지막 검진을 앞두자 나도 포기하고 제왕절개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선택 제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건 산모가 완강하게 제왕절개를 하고 싶다 하면 의사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만, 이 나라에서는 어찌 되었든 수술은 필요한 사람에게만!이라는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생일을 산부인과 의사의 스케줄에 따라 골라야 했다. 프랑스에서 제왕 절개는 39주부터 진행 가능했고, 5월 7일은 딱 39주 차 0일 되는 날이었다. 다른 날짜는 너무 뒤라 진통이 올까 봐 두려웠다. 5월 7일. 07/05/2025. 나쁘지 않잖아? 게다가 프랑스에서 5월 8일은 Armistice,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축하하는 공휴일이니까. 생일날 미친 듯이 놀고 다음날 쉴 수 있잖아?라는 철없는 엄마의 생각도 들었다. 수술 날짜를 정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초조해졌다. 몸이 무겁다 보니 입원하는 날만 손꼽아 매일매일 기다렸다. 입원전날과 입원 당일 (수술 하루 전에 입원을 해야 했다)은 마치 폭풍전야처럼 아주 고요했다. 조바심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이전의 삶에 작별인사를 건네는 듯한 시간이었다. 파트너와 나는 그날, 몇 번이고 서로를 무심코 껴안았다. 싱숭생숭하고 기이한 시간이었다. 그 역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이상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수술 J -1 (5월 6일)
16시 30분. 병원 마감 30분 전에 입원수속을 밟으러 가야 했다. 파트너는 카시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27인치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었다. 나는 고양이에게 혹시나 4-5일 넘게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집안 곳곳에 물과 사료를 배치했다. 우리 고양이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을까? 급한 것도 없는데 마음이 쿵쾅쿵쾅 뛰었다. 병원으로 가는 10분 남짓한 동안 나와 파트너는 꽤나 긴 침묵을 지켰다. 병원이 보이자 그는 나에게 시덥잖은 농담을 던졌고 나는 답 대신 웃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바로 우리가 수술 전후로 묵을 방을 알려줬다. 305호. 개인실이었지만 우리는 큰돈을 내고 싶지 않아 가장 저렴한 방을 (하루에 100€다) 선택했다. 파트너를 위한 간이침대 - 미친 듯이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와 등받이 조절이 가능한 병원침대가 우리를 맞이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병원 침대에 앉아보지도 않았던 사람으로서 기분이 너무나 생소했다. 배가 무거워 짐을 옮길 수도 정리할 여력이 없었지만 그냥 침대에 앉아있기엔 병원 공기에 섞이지 못하고 맴도는 내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던 순간에 다행히 아기 심박동 검사와 수축검사를 하러 갔다.
침대에 누워 배를 내놓고 사쥬팜의 사무실에서 하던 것처럼 아기 심박동과 자궁수축을 검사했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다행히 큰 수축은 없었고, 아기의 심장 또한 잘 뛰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몸이 너무 불편해서 당장 수술대로 뛰어올라가 제발 애기를 꺼내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배, 허리, 서혜부, Y존 통증은 모든 움직임에 동반했다.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서있거나 어떤 자세든 불편함은 아기가 나와야만 사라질 것 같았다. 검사가 끝나자 내일 입을 수술복과 베타딘 소독약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소독약으로 샤워를 하라니. 빨간약 샤워? 하라면 해야지.
해가 졌다. 아기를 만나기 하루 전. 아침 8시 수술이기에 빨리 잠에 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쉬이 잠들지 못했고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를 보기로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본 영화였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내용을 까먹었고... 주인공이 사산하는 내용이 있었던걸 알게 되자 우리는 영화를 껐다. 하하하. 이게 무슨... 우리는 어떻게든, 어찌 되었든 잠이 들었다. 마지막날 밤을 파트너와 살을 부비며 잘 수 없음에 조금은 슬펐고, 또 두려웠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에 또 한 번 놀랐다.
지독하게 고요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