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젝띠,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이야기.
비록 어제의 일이 아니어도 생생히 그때의 향기가 기억이 난다면 꽤나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프랑스 남부의 미술학교를 다닐 시절, 겨울이었다. 17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라 라디에이터로만 실내를 덥히고 있었다. 학생들은 스무 명 조금 안되었으려나, 우리는 약간 구식의 컴퓨터 앞에 앉아 처음 컴퓨터 교육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이리저리 마우스를 움직이며 교수를 기다렸다. 메모장이라도 켜서 수업 노트라도 써야겠다- 하는 순간 마주한 키보드.
이 수업이 바로 나로 하여금 프랑스에 오래 머물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고 말하면 우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바람이 매섭던 그날, 천장이 아주 낮았던 그 교실의 라디에이터 냄새, 보자르* 학생들 특유의 담배에 절은 며칠간 감지 않은 머리 냄새,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교수의 코튼향 향수 냄새가 어슷 기억난다면.
보자르* = 파인아트, 순수 예술
대체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묻는다면 사진 속 키보드의 왼쪽 쉬프트 옆 여섯 글자와 당신의 키보드의 여섯 글자를 비교해 보자.
AZERTY?
프랑스식 자판은 우리가 흔히 쓰는 QWERTY가 아닌 AZERTY를 사용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마침표와 느낌표, 물음표, 숫자를 칠 때 쉬프트를 눌러야 한다는 점 등등 다른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어학연수를 할 때나 프랑스 대학교 초반에는 늘 내가 한국에서 가져간 한글 쿼티의 자판을 썼지만, 이 또한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프랑스어에는 자세히 보면 악센트가 달린 알파벳들이 존재한다. 씨흐꽁플렉스 ^, 트레마 ¨, 쎄디으 ç, 게다가 à é è... 그러다 보니 일반 영어 베이스 자판인 쿼티로는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알파벳들이 있었다.
아젝티(azerty) 키보드를 마주한 내가 느낀 것은 어쩌면 자기 암시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키보드조차 적응하지 못한다면 과연 나의 유학생활은, 나의 프랑스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 나는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석사를 하던 중 오게 된 유학이라 치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내가 결심하고 실행하게 된 유학길에 박차를 가하고 싶었다. 프랑스에서 오래, 멋지게, 잘 살고 싶었다.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FNAC*을 들러 키보드 커버를 샀다.
FNAC* = 한국의 교보문고와 하이마트 그 사이 어딘가.
그렇게 나는 8년 뒤, qwerty보다 azerty가 더 편한 사람이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