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것의 미학

나의 심리 상담 기록 2

by 미래

브런치에 가끔 시간이 날 때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기다렸지만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임산부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지 어언 8년 정도가 되었고 우리는 해가 넘어갈수록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30대가 되고 그가 40대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정관 수술을 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다. 나는 단박에 당신의 몸인데 당신의 선택에 맡길게-라고 말했다. 그즈음 나는 석사를 마치고 갓 직장인 생활을 시작하던 때라,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쿨한 대답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 내가 정 원하면 정자은행을 갈게. 이런 농담을 하면서.


그렇게 그는 정관 수술을 예약했다. 재밌는 건 프랑스는 4개월 정도의 다시 생각할 유예기간을 준다. 그리고 한 달 도 지나지 않아 그는 예약을 취소했다. 몇 번의 깊은 대화 끝에 우리는 아이를 갖는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이 정도의 돈이 모이면, 이 정도의 용기와 의지가 생기면 -이라는 수많은 조건을 달아놓고 말이다.


해가 지날수록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28살 즈음엔 아무도 없었더라면 33살이 되니 지인들의 반 이상이 아이를 갖고 하물며 둘째를 갖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이 너무 컸다. 엄마가 되면 다 달라져-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갓 태어난 아이들의 초점이 없는 깊고 커다란 눈을 보면 갑자기 서러워졌다. 삶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은데, 넌 그것도 모르고. 삶이 원래 고통스러운 것을 어떻게 아이한테 가르쳐야 하는지,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법을 나도 아직 모르고 배우려고 아등바등인데 어떻게 감히 누군가에 가르침을 줄까 생각하면 아주 깊은 우울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사실은 아이는 내가 아닌데. 그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 딱 5주를 채운 날이다. 배아는 이제 참깨정도의 크기라고 한다. 배가 간혹 가다가 콕콕 찌르며 아프거나 상상도 못 한 곳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을 느낀다거나 할 때 엄습하는 그 무서움을 조금 견디기 힘들어 10일 뒤쯤 상담을 잡았다. 선생님을 보러 가기 전에 이 감정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서두가 한참 길었다.


나는 어리다면 어리고 많다면 많은 서른셋에 첫 아이를 임신했다. 우리는 9개월이라는 시간을 시도했지만 각자의 여행과 출장을 제외하고 총 6번의 기회가 있었다. 아주 빠르게 된 케이스임에도 불구하고 저번 달에는 결국 조바심이 나서 병원에 가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피검사까지 해봤고 파트너 또한 정자 검사를 했다. 우리는 모두 정상이었지만 괜히 안달 나는 그 마음,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 만한 그 마음이다. 여하튼 그렇게 임신인 것을 확인한 날, 우리는 임테기를 보고 둘이 부둥켜안고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이었다면 바로 산부인과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일러도 초음파도 해봤을 테지만 프랑스는 역시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나라랄까(물론 풍자다!). 우선은 주치의와 약속을 잡고 피검사를 받을 수 있는 처방전을 받아 피검사를 받고, 피검사 결과를 또 기다린다. 그러고 나서 임신 11주 차 즈음에 첫 초음파를 한다고.


이틀 뒤에 주치의를 보러 간다. 5주 하고도 삼일째에 하게 될 피검사. 그 와중에 너무나 두렵고 설레고 불안한,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임신테스트기를 하고 다시 안심을 하고, 배가 아프거나 속이 안 좋으면 그래 증상이 있으니까라고 안심을 하면서도 불안함이 말로 할 수가 없다. 게다가 파트너 말고는 아직 아무 도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함을 터놓을 곳조차 없다. 자다가 깨도 항시 불안한 마음이 엄습한다. 이번 상담에는 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재밌게도 파트너 다음으로 처음으로 임신 사실을 알게 될 사람은 나의 심리 상담가 일 것이다.


할 이야기가 여러 가지가 있다.


1. 불상사가 생길까 봐 두렵다. 이 두려운 마음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도 잘 잘 수 없다.

2.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나를 미치게 한다. 어디서부터 이런 control freak의 기질을 뿌리 뽑아야 할까.

3. 미래를 걱정하며 현실을 즐겁게 지내지 못한다. 좋은 엄마가 될 나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혹시나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계속해서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는 것을 스스로 방해한다.

4. 이걸 다 안다. 알면서도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익숙하고 더 편안하다. 이게 더 나를 보호해 줄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산다.


다음 주에는 피검사 후기, 그 다다음주에는 상담 후기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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