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심리 상담 기록 1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은 차를 운전해 10분 남짓한 거리다. 이 짧은 거리를 가기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과연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맞는가, 누구나 이렇게 괴롭게 사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외면했다. 인생은 고(苦) 아니겠습니까.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라 비에 벨*(La vie est belle = 인생은 아름다워) 일 수가 있습니까.
심리 상담을 왜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을 한 사람의 생각을 간파해야만 하는 내가 싫어서라고 답해야겠다. 사실은 상담을 가기 전에 이 복잡한 생각을 프랑스어로 잘 정리해야겠다는 의지 하에 일기도 쓰고 상담에 쓰일만한 단어들도 검색했다. 나의 절친은 (상담 선배, 나에게 상담을 강력히 추천했던 사람이다) 상담마저 준비하는 나를 보며 너의 불안은 끝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18시. 일을 갈무리하고 그 짧고도 길었던 거리를 운전해 클리닉에 도착했다. (이미 10개월 전의 이야기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대기실은 늘 하얗고 아주 낮은 데시벨의 라디오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10분 정도 대기하니 문이 열리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아주 평범한 30대 중반의 백인 남자인 선생의 얼굴이 보였고, 그는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요?
순간 서러워졌다. 이 사람은 전문가니까, 내가 상담 비용을 내니까, 나의 말을 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말할 사람이 없었던 게 전부였을 수도 있다. 나의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서러움을 뒤로하고 나는 말했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되찾고 싶어요.
유학생 시절, 일상의 평온을 깨트리는 외부의 자극들이 무척 많았다. 있는 그대로 나로서 존재하기엔 이 나라는 생각보다 엄격했다. 길가에서 당하는 인종차별, 학교에서는 투명 인간 취급, 수아레(파티 혹은 술자리정도로 생각하면 된다)에서는 애인이 데려온 강아지가 된 기분 등등- 모두가 나를 공격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예민해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기. 항상 중립의 감정으로 지내기.
이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행복해지는 법도, 목놓아 우는 법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는 게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역설적으로는 학생의 지위를 벗어나 일을 하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생활력이 강해졌다. 그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이 사람은 진심으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인 거였다. 그 사람의 행복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가 정상에 있을 때 밑에서 올려다보는 마음이 외로웠다. 그 정상에서 함께 웃고 싶었다.
상담이 끝나고 나서 스스로에게 '와, 나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는다는 거, 꽤나 중요하구나. 집에 돌아가는 길은 어둑어둑해서 내가 더 잘 보이는 듯했다. 한 달 뒤 또 두 번째 상담을 받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