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순수 형태와 독자의 익명성

쓰기에 대하여 1.

by YT

0.

‘읽기에 대하여’를 쓰면서, 쓰기는 읽기의 비전으로 몇 번 나의 글에 등장하였다. 하지만 읽기는 그 자체로 공유되거나 나눌 수 없으며, 말하기 혹은 쓰기를 통해서만 다른 사람과 공유 가능하다. 말하기가 비교적 적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쓰기는 보다 많은 사람, 특히 익명의 다수를 대상으로 자기 생각의 전달 및 타인과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욕망을 고려해볼 때, ‘읽기에 대하여’를 쓰면서, 곧 ‘쓰기에 대하여’도 쓰게 될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1.

쓰기의 가장 원초적인(순수한) 형태는 아마도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일기일 것이다. 일기는 자신이 작가이면서, 자신이 독자가 되는 형식이다. 그래서 일기에는 못할 이야기가 없고, 아주 깊숙한 내면, 심지어 자신의 터부까지도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일기다. 그렇기에 일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밀의 보장’이다. 일기의 내용은 절대로 나 자신 외, 다른 이에게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우리는 일기를 방학숙제로 받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야 했고, 방학이 끝난 후 숙제로 제출해야 했다. 엄밀히 방학 숙제로 해간 일기는 일기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일기와 비슷하지만 쓰기의 또 다른 원초적인 형태로서 편지가 있다. 편지는 대상이 구체적인 인물이라는, 일기와는 다른 분명한 차이가 있다. 편지는 대상과의 친밀도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의견의 수위가 결정된다. 우리는 인간의 깊은 심연과 포장 능력을 연애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기와 편지의 일인칭 관점은 글 속에 너무나 많은 감정이 포함되기 때문에 타인이나 제삼자에게 보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Brunch를 하면서 과거 일기로 써 두었던 글들을 인터넷에 올리려면 글 속에 포함된 신변잡기 같은 것, 그것에 녹아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어느 정도 제거하고 정화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함을 알았다. 독자를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그들에게 나의 글(일기)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기는 우리 사회가 혹은 나 스스로 그어놓은 자기 규제 라인을 뚫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쓰기에 가해지는 사회나 자신에 의한 검열은 좋은 글을 만드는 진정성과 깊이를 해칠 수 있는데 일기는 형식이 주는 장점 때문에 내용적인 면에서 스스로의 규제를 극복할 가능성이 다소 커지는 것이다. 다소 커질 뿐이다. 일기라고 자신의 감정이 온전히 담길 거라고 기대하진 말자.

이와 비교하여 외견상 일기처럼 보이는 ‘나’가 주인공인 1인칭 소설은 어떠한가? 1인칭 소설은 비록 일기와 비슷한 형식을 취할 수는 있지만, 시작부터 독자를 고려하여 탄탄한 플롯으로 짜인 구조 위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느껴지는 개인적인 감정의 과잉이나, 신변잡기적인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그 소설의 깊이를 더하고, 구성을 더욱 탄탄하게 하는 것이 된다.


2.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편다는 측면에서 말하기와 쓰기는 같은 목적을 공유한다. 하지만 앞의 서문에서도 말했듯이 말하기와 쓰기는 대상의 규모와 밀접도가 다르다. 말하기는 아무래도 청중과의 밀접도가 높고, 소규모인 경우이고, 쓰기는 독자와의 밀접도가 거의 없으며, 익명의 다수가 대상이 되는 것이 대개의 경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자의 익명성인데, 익명성은 작가에게는 부담이고, 공포일 수 있다. 독자의 익명성은 쓰기 자체를 어느 정도 그 사회의 준칙에 맞추고자 하는 작가의 자기 검열 장치를 발동하게 할 수도 있고, 전달하는 방식도 좀 더 부드럽고,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쓰기는 말하기보다 ‘익명성’의 부담이라는 감각을 가진다.

이런 익명성의 맥락에서 ‘방송/인터넷 상에서 말하기’ 역시, 같은 시청자(독자) 익명성을 가진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익명성이 주는 부담과 공포를 떨쳐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요즘은 댓글이 실시간으로 날아와 나의 심장에 박히는 세상이 아닌가? 실시간 소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내공이 아니다. 그래서 시청자의 익명성에서 오는 공포는 화자와 작가를 규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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