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에 대하여 2
3.
니체의 글씨기 방식 1. 니체의 잠언적인 글쓰기 – 이것은 아주 불친절한 글쓰기다. 잠언적 글쓰기에는 너무나 많은 생략과 비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재의 글쓰기 방식이다. 머릿속에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 전체를 손을 통해 뽑아낼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생각의 전진을 글로 잡기 위해서는 비약과 생략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단 뛰기, 삼단 뛰기, 공중 젓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천재들의 글쓰기다.
또 2. 니체의 글쓰기는 음악이다. [선악의 저편] 4장은 ‘잠언과 간주곡’인데, [선악의 저편] 전체에서 4장은 쉬어가는 코너이고, 마치 독서 중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산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매우 실험적인 글쓰기 스타일, 마치 음악과도 같은 글쓰기를 보여준다. [선악의 저편]은 서곡에서 발전, 진행, 잠시 동안의 명상, 그리고 다시 전개, 확대, 클라이맥스, 그리고 카타르시스로 이루어지는 완벽한 음악이다. 니체의 글쓰기는 내용의 깊이를 떠나서 글 자체가 거대한 교향곡이고, 오페라다.
번역 때문일 것 같지는 않지만,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학]에서 보이는 3. 니체의 글쓰기는 마치 듣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 글쓰기 스타일을 구사한다. 어떤 경우 물어보기도 하고, 동의를 구하고, 나무라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런 전체적인 글쓰기의 TONE & MANNER는 실제적으로는 매우 유약한 니체 자체를 매우 열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과도한 상상이겠지만, 니체의 글을 읽으면 나는 공산당 정당대회에서 탁자를 치며, 열정을 토해내는 레닌을 연상하게 된다.
4.
법정스님은 본인의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의 책을 모두 절판하라고 유언했다. 그동안 본인이 써왔던 글들은 일종의 업이고, 본인의 쓰기가 업을 짓는 행동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부인 나로서는 법정스님의 글들을 수련의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 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법정스님은 수련의 과정에서, 번뇌와 고난의 다스림의 과정에서 정제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오만 가지 생각들을 쓰기로 풀어낸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는 그런 번뇌의 찌꺼기를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 불교의 정수에 들어가는 방편으로 쓸 수 있지는 않을까? 법정스님은 너무나 단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