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 대하여 8.
16.
강의를 들으며 독법을 익힌다. – 우연히 유튜브로 보게 된 EBS 초대석, 김헌 교수의 말이다. 그리스 고전 읽기가 처음에 다소 어려우면, 강의를 통해 읽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데리다를 읽기 전에(비록 데리다에 대한 평론이지만) 강남순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그것은 내게 분명 어려운 데리다를 이해할 수 있는 빠른 길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후 나의 데리다 읽기는 ‘강남순 필터’를 장착한 데리다 읽기로, 그녀의 관점이 많이 투영된 읽기다. 이런 읽기에는 딜레마가 있는데, 온전히 책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부족하고, 독법을 익힌 후 읽는 것은 온전한 100%의 데리다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하지만 이런 해석과 해설, 가르침의 과정은 최초의 인류가 아닌 이상은 계속되어왔다. 독법을 익힌다는 것은 어쩌면 읽기의 사회화 과정이다. 읽기를 다른 주류 읽기로 편입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독법은 결국 法이 되고, 우리의 읽기는 몇 가지로 제약되는 사회화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다소 편협할 수 있는 독법을 극복할 것인가? 처음에는 기성 독법의 필터를 통해 이해하지만, 비판적 읽기를 통해, 여러 번 읽기를 해간다면, 우리는 부처를 만날 수 있고, 또, 그동안 우리를 인도했던 부처(독법)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읽기가 주는 궁극의 즐거움이고 쾌락이다.
17.
고전 읽기는 책이 쓰인 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하고, 그 배경 속에서 책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 –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만큼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가? 시대적 배경을 파고 들어가다가 아마 우리는 땅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다시 그 고전으로 돌아오지 못할지 모른다. 이해가 깊어지면, 그 속에서 '포기'가 자란다. 그럼 적당히 시대적 배경을 알고서 책을 읽어라? 아니다. 데리다의 말처럼 TEXT는 이미 작가의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시대적 배경과 의미를 아는 것이, 약간의 추가적인 의미 통찰을 줄 수 있지만, 읽기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은 아닐지 모른다. 읽기는 늘 현대적인 의미로 재 해석될 때 그 진정한 가치가 있다. 특히 고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영어가 집을 나온 이후, 인도 억양이 입혀지고, 아프리카 억양이 입혀지고, 한국인의 억양이 입혀져도, 영어이듯이, 책은 다른 방식으로 읽혀도 마찬가지로 다 한 권의 같은 책이다. 읽기를 통해 책의 외연이 확장될 뿐이다. 일단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