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읽기에는 밀도가 있다. 책 자체에 밀도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읽기 체험의 과정에서 밀도는 경험된다. 개인적으로 시집을 읽을 때면 도무지 앞으로 진도를 나갈 수 없다. 그 얇은 책이 너무나 무겁고, 감정이 내 목구멍을 찢듯이 넘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집을 읽을 때면, 그것을 소화시키지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자주 쉼을 가질 수밖에 없다. 100 페이지도 안 되는 시집 한 권을 읽는데, 4-500 페이지의 대하소설을 읽는 만큼 시간을 소비한다.
소설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그 이야기에 빠져 같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편안함이 있다. 이것은 의미 이해의 어려움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리 어려운 철학 책도 흐름을 타는 읽기가 있으며, 일단 그 흐름의 물결을 타면 쉽게 쉽게 흘러간다. 하지만 시는 마치 물에 빠진 채, 그 강물을 모두 들이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는 형식적으로 소설에 비해, 너무나 턱 없이 짧지만, 시의 목 넘김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뻑뻑한 밀도를 가지고 있다.
시가 밀도가 높은 것은 시어와 문장 자체가 은유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은유는 사람에게 이해의 노력을 요구하고, 감정의 폭발을 일으킨다. 시의 한 소절은 소설의 1페이지와 맞먹고, 시 한 편은 소설 한 권이 된다. 왜 그럴까? 은유는 은유의 대상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유는 ‘은유의 대상 + 알파’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은유 표현인 ‘내 마음의 호수’를 사례로 들어보자.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을 호수로 은유한 것인데, 여기에는 잔잔함 뿐 아니라, 호수가 만드는 습한 공기, 공기와 같이 폐 속으로 들어오던 물 냄새, 호수에서 튀는 아침나절의 물고기, 물안개 낀 호수의 표면 등. 이 모든 알파는 ‘잔잔함’과 완전히 일치하지도, 배치되지도 않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알파’ 때문에 특정 은유의 표현은 머릿속을 꽉 채우는 것이고, 그래서 시어의 밀도는 높은 것이다.
15.
읽기는 독자의 삶에 변형을 가한다. 흔한 영향관계를 의미하는 장기적인 변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으로도, 읽고 있는 그동안의 마음과 몸에도 변형을 가한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나를 아프게 한다.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이 아프다. 마치 나의 기가 모두 빨려 탕진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나의 현실 생활이 지장이 있을 정도다. 특이 이 책은 1인칭으로 되어있어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책을 놓고도 좀처럼 책의 아우라에서 벋어 날 수 없다. 책 속의 ‘나’는 나가 되어 나를 때린다. ‘나’의 집요한 인파이팅에 나는 녹초가 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이에 반해 [도덕의 계보학]은 마치 개선장군을 맞는 축제의 현장처럼 가끔 팡파르가 울려 퍼지며,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불끈불끈 팔뚝에서 힘이 솟아남을 느낀다. 니체도 안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역시나 밖을 때리는, 밖으로 향하는 정복자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철학 책에서 보통 철학자는 머릿속 이미지의 주인공이 된다.) 다 쓸어 버리는 흥분이 느껴진다. 내게 [도덕의 계보학]이 시원한 액션 영화라면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음울한 소재의 비극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