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메타버스 세상이다

읽기에 대하여 5.

by YT

10.

읽기의 1차적인 목적은 이해가 된다. 이해의 바탕 위에서, 교감이나 감상 등의 감정적인 것들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책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의 의지로 읽기는 시작되지만, 곧 나의 평가와 감정이 그 순수를 훼손한다. 그러면서 기초적인 내용에 대한 동의와 부 동의가 발생한다. 동의와 부 동의는 읽는 자의 가치관에 기반한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데, 동의나 부 동의에 상관없이 이것은 읽기 행위의 확장으로, TEXT와는 다른 생각이고 구성이다.

이렇게 읽기는 TEXT에 대한 진정한 접근(이해)으로 시작하지만, 본질적으로 TEXT를 배반하는 행위가 된다. TEXT의 언저리에 얼마나 가깝게 혹은 멀게 독자의 이해를 구축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게 된다. 멀게 구축한다는 것은 TEXT 읽기를 통해 확장의 확장을 거듭한다는 것으로, 원작의 읽기와 너무나 멀어진 읽기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확장은 기본적으로 원작의 이해에서 출발하지만 뛰고, 점프하여 2차, 3차의 확장을 단행하게 되면 완전히 TEXT와는 다른 변종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읽기에서 발화한 불똥은 바람을 타고 온 산을 다 태울 산불로 번져버린다. 우리는 과거에 이것을 삼천포로 빠졌다고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불타버린 산도 산이며,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 세상이다. 최근 인터넷에 구축된 현실과 유사한 형태의 사회를 메타버스라고 하는데, 이미 우리는 본질적으로 읽기를 통해 무수히 많은 메타버스 세상을 만들어 오고 있었다. 그것이 각각 독자의 머릿속에서 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마블의 세계관이 어떻고, DC의 세계관이 어떻고 하는 것도 모두 메타버스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11.

쓰기는 읽기의 비전이라고 했다. 그러면 읽기를 바로 쓰기로 바꾸어 버리는 독후감, 서평은 무엇인가? 쓰기의 인스턴트 버전이라고 할만하다. 독후감과 서평이 더 쌓이고, 독자의 마음속에서 익으면 김치찌개가 되고, 궁중 요리도 되는 것이다.

독후감은 읽기를 마치고 머릿속에서 정리된 생각의 형태로 뽑아내는 것이 보통이다. 거기에 과거의 읽기 경험과 자신의 생각이 양념으로 곁들여지면 인스턴트라도 조금은 요리 비슷한 것이 된다. 하지만 나로서는 능력의 한계로, 특정 구절/ 단락에 대해 토를 다는 형태 정도 밖에는 할 수 없음이 아쉽다. 언제쯤 이런 파편적인 쓰기의 형태가 극복될 수 있을까? 여러 번 반복하여 읽어보는 수밖에…… 그러면 다시 읽기가 쓰기의 비전으로 뒤집힌다.

그리고, 서평 – 아무리 대상 책에 대해 잘 알고, 그 작가를 전공한 박사라도 서평을 쓰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자신의 서평이 책을 온전히 100% 반영할 수 없다는 마땅한 겸손이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라면 서평을 위해 펜을 들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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