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우월함

읽기에 대하여 4.

by YT

9.

‘TV만 맨날 보지 말고, 책 좀 봐라!’ – 내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항상 듣던 말이다. 이 말속에는 책이 TV보다 어린이에게 좋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나 역시도 지하철에서 모바일을 보는 사람보다 책을 보는 사람이 더욱 멋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그럼 책은 왜 다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와 권위를 오랫동안 가질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에 책의 우월성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역사의 관성’ 때문이다. 책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점토판에서, 양피지로, 죽간의 형태로, 책의 역사는 족히 몇 천년을 능가한다.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고, 또 책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준 인쇄술의 발명도 적어도 500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동안 책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일상을 지배해왔다. 지혜는 현실적인 혹은 이상적인 최고의 가치로 숭배되었고, 이런 지혜는 책 속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된 것이다. 현실적인 인간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했고, 또 고정된 관계를 뒤집기 위해서도 책을 읽어야 했다. 과거시험 같은 제도의 정립은 책의 가치를 더욱 높였으며, 종교는 책을 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런 역사적인 과정으로 인해 현재에도 책은 여전히 다른 경쟁자(라디오, TV, 영화, 유튜브 등)들에 비해 우월한 인식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즉, 이런 역사적인 전개 과정의 힘이 현재에도 관성으로 사람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책과 라디오는 서로 다른 감각기관을 통한다. 하지만 다른 감각기관이라도 의미 작용의 과정을 거친다는 측면에서는 같다. 책과 TV(영화, 유튜브 등)는 같은 시각을 통하며, 의미 작용을 일으킨다는 측면도 같다. 하지만 깊이가 다를 수 있다. 책은 완전히 이미지를 쌓는 것이지만, 이미지의 관점에서 TV는 너무나 많은 것이 이미 주어져 있다. 구체적인 주인공이 있고, 구체적인 배경이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주어진 이미지들은 상상력, 창조력의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다. 책은 작가의 한계 때문에, 또 지면의 한계 때문에 TV만큼 정교한 묘사는 불가능하다. 즉, 책은 TV에 비해 독자 스스로 쌓아야 하는 돌들이 더욱 많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책이 다른 매체에 비해 어린이/젊은이의 정서 계발에 더욱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설명은 최근 들어 의미가 다소 약해졌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들 조차 어느 정도 우리가 알고 있는 TV, 영화, 유튜브의 기존 이미지를 차용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책 읽기는 우리의 생활이나 순수 상상 속에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영상에서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를 차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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