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서의 객관성

읽기에 대하여 3.

by YT

8.

읽기에서 객관성은 무엇일까? 읽기에서 객관성은 유지되는가? 또, 그것이 가능한 것이긴 한 걸까? 지적 내공이 비슷한 경우면 모르겠으나, 읽기에서 대부분의 독자는 저자보다 내공의 열위에 있다. 책을 읽는 1차적인 목적이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라면, 일단 내 맘대로 읽기보다는 저자의 생각과 논리들을 이해하며 적극적으로 쫓아갈 필요가 있다.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객관적인 읽기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생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되도록 하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어느 순간 저자의 의도에 완전히 매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점차 저자의 논리에 설득당하고, 저자를 이해하고, 나의 생각은 없어지고 점점 그의 생각으로 내 머릿속이 채워지게 된다. 반면, 주관적인 읽기는 자칫 저자의 생각과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자를 오해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무지와 오해에서 세워진 자신의 견해는 매우 위태로워진다. 객관적 읽기와 주관적 읽기의 균형이 매우 중요해지는 지점이 여기인 것이다.

적극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쫓아가다가 어느 순간 분기점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분기점은 저자의 의견에 대한 해석과 비판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비판적 독서(주관적 읽기)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즉, 이전까지는 저자의 뒤를 단순히 쫓는 과정이었다면, 분기점은 독자의 사고가 저자로부터 튀어 나가는 부분이고, 독서는 관조적인 것으로 변형되어, 저자와 평행의 공간을 달려가게 된다. 그래서 종국에는 저자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최초의 독서를 일으킨 지점에서 보면 방사형으로 쏘아진 화살과 같은 모양이 된다. 어쩌면 막막한 길을 마주하거나, 컴컴한 사막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히 미지의 보물, 뜻하지 않은 보석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독서의 방법이 비판적 읽기다. 니체의 독서가 그러했다. 영국 심리학자들의 도덕에 대한 논의를 쫓아가는 과정에서, 도덕의 진정한 형태와 발생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마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모든 형태의 보물도 이러한 식으로 발견되었을 것이다. 이슬람이 기독교의 비판과 극복에서 나온 것이고, 불교는 힌두교의 비판과 극복에서 나온 것이고, 개신교 역시 가톨릭의 극복 형태인 것이다. 주관적(비판적) 독서 경험은 이런 지양과 극복을 위한 방법론의 작은 세계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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