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방법

읽기에 대하여 2.

by YT

3.

일정 정도의 두께를 가진 책을 물리적으로 쉼 없이 한 번에 읽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화장실 가는 시간 같은, 약간의 짧은 단절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실생활에서 짬짬이 독서를 해야 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단절은 피할 수 없다. 읽기는 본질적으로 작가의 주장을 따라가는 것이기에, 이런 불연속의 읽기는 놓친 생각의 끈을 계속 잡아가야 하는 추적의 과정이다. 짧은 단절의 상황에서도 독자의 상황과 주관은 변경될 소지가 있으며, 이 미묘한 차이가 독서 경험을 갈지(之) 자로 만든다. 기본적으로 독서 경험은 반듯한 일자가 아니라 갈지 자다. 1회의 독서 경험조차 날카롭게 베어진 직선이 아니라 군데군데 이어지고, 기워진 구불구불한 곡선이다.

그래서 시간 격차를 두고 책을 두 번, 세 번 읽을 때 책이 완전히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책의 의미는 매번 달라지고, (만약 온전한 의미가 있다면) 책의 온전한 의미 확정은 계속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한 권의 독서 체험은 계속 달라지며, 그 의미의 확정은 계속 지연된다.


4.

비록 단절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도 전체 책 속의 매듭/작은 맺음을 의미하는 소 단락 정도는 방해 받음 없이 단숨에 읽기를 권장한다. 가능하다면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맺음 된 작가의 의도와 문장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다. 단락 중간에 책을 덮어 버린다면 온전한 되새김의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되새김질’은 의미의 이해 과정이고 책 읽기의 필수과정이기 때문이다.

책을 좀 더 집중하여 읽을 경우, 즉 오랫동안 쉼 없이 읽을 경우 생각의 깊이도 깊어진다. 왜냐면 새로운 개념과 논의들이 독자를 자꾸 심연으로 잡아끌기 때문이다. 읽는다는 것은 책 속으로의 잠수를 의미하며, 책 속에 가라앉아 한 권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밖으로 자주 빠져나올수록, 즉 쉼을 많이 가질 경우, 과거 경험과의 연결성이 떨어지고, 읽었던 개념과 논의들이 기억의 한계로 잊히기 때문에 그 생각의 깊이가(독서 경험의 깊이) 얕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단 후에는 다시 중단 단락의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 다시 잠수를 하려면 나의 폐를 어느 정도 예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5.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어느 정도 읽은 시점부터는 작가의 의도, 사용하는 어휘와 톤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사로잡힐 필요 없이 술술 읽힌다. 마치 달리는 말에 올라탄 듯한 느낌이 들 때이다. 처음 약간의 껄끄러움과 낯섦을 견디면 어려운 책도 거뜬히 읽어갈 수 있다.

하지만 가끔 그동안 읽었던 논조와 논리에 어긋난 부분을 만나기도 하는데, 특히 어려운 철학 책에서 더욱 이런 현상이 흔하게 발견된다. 독서하다 이런 부분이 나오면 많이 난감하다. 그래도 반복해서 몇 번 그 부분을 읽으면 나의 오독이 수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 이해되지 않고 남는 문장이나 단락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과감히 뛰어 넘어가는 것도 좋겠다.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이거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완전히 이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주석이 많은 책, 철학 책 등을 읽을 때 주로 생기는 경험인데, 모르는 말을 인터넷/사전으로 검색하며 읽기를 하는 것은 독서를 미궁으로 인도한다. 검색 행위가 주는 이 끝없는 연쇄는 너무나 과한 것이 되어 결국 읽기 자체를 마치지 못할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검색은 종종 또 다른 검색의 가지를 친다. 그렇게 가지를 쫓아가다, 다시 읽기로 돌아올 때, 우리는 아주 낯선 책을 대하는 된다. 이런 경우라면 우리는 다시 그 앞장에서부터, 혹은 처음부터 다시 읽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6.

자신이 좋아했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명저를 두 번, 세 번 읽을 때, 우리는 특정 문구, 특정 문장 혹은 특정 단락이 가까워질수록 어떤 설렘의 감정이 온몸을 감싼다. 그 기쁨이 주체할 수 없어서, 그 문장의 입구에서 나는 꼭 쉼을 가져야 한다. 그런 단절 없이 나는 도저히 그 문장을 마주할 수 없을 지경이다. 처음 읽을 때는 어! 어! 하는 새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그 부분의 도래를 알고 있기에 두근거리는 것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읽기에서는 극장의 맨 앞자리에 앉아, 넋을 잃고, 천상계의 논리 초식을 슬로모션으로 즐길 수 있다. 이것이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을 때의 재미 중 하나 일 것이다.


7.

소리 내어 읽기 – 드라마에서 보면 우리 선조들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경우를 흔히 본다. 책을 읽을 때 눈 외, 입과 귀를 동원하면 훨씬 그 의미가 더 잘 파악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개의 감각기관이 같이 동원될 때, 읽기는 뇌를 더 자극하는 듯하다. 나는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던 구절도 소리 내어 읽어 보면, 그 의미가 문득 이해되는 순간을 가끔 경험하곤 한다. 하지만 공공 도서관, 지하철 안에서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없다. 그리고 장시간 소리 내어 읽기는 독서의 피로도를 증가시킨다. 소리 내어 읽기는 강화되어야 할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터보 엔진 버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눈으로 읽을 때, 누군가 같은 구절을 옆에서 소리 내어 읽는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는 우리가 학생일 때 이런 읽기의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오늘이 10월 25일이지? 25번 일어나서 다음 단락 읽어봐!’ 이 경우도 눈과 귀, 2개의 감각기관이 동시에 동원되지만, 자기 혼자서 소리 내어 읽을 때와는 다소 다르다. 어떤 경우 이해력의 정도가 더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읽는 이의 능력과, 속도, 방법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눈으로 읽는 속도와 다르게 흘러가기도 하고, 자신의 쉼표가 아닌 읽는 이의 쉼표는 나를 혼란에 빠트리고, 웅얼거리는 명확하지 않은 발음은 나를 짜증 나게 할 수 있다. 이경우 읽기는 나의 시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간 속에 있어서, 전파를 타고 오는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나의 통제가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읽기의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닌 것이다. 즉, 라디오를 듣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은 대상의 시간에 나를 맞추는 것으로, 나는 시간의 통제 자가 될 수 없다. 읽기는 올곧이 혼자 만의 체험 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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