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읽기에 대하여 1.

by 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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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의미는 근래에 와서 은유로 그 외연이 확장되었다. ‘데이터 읽기’, ‘사람의 마음 읽기’, ‘상황 읽기’ 등, 읽기의 외연 확장은 읽기 행위가 이해와 통찰의 과정임을 이해하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본래적 의미인 ‘책 읽기’로 한정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그동안 계속하여 읽어왔고,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될 것 같은 '읽기 행위'에 대해 분석하고, 요모조모 따져도 보고, 정리해보려 한다.


1.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읽은 내용과 관계된 어떤 연상이 발생하게 되며 그런 연상은 기존의 경험과 더불어 구체적인 형상이 된다. 이런 이미지 만들기의 과정은 소설을 읽을 때나 철학 책을 읽을 때나 모든 경우에 발생한다. 어쩌면 이미지 만들기는 읽기의 본질인지 모른다. 소설 읽기는 스토리 라인을 따라 충실하게 완성된 한 편의 영상을 만들어간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이다. 실제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은 구체적인 촬영이 이루어지기 전, 영화감독의 머릿속에서 이미 온전한 한편이 완성된다.

이에 반해 철학 책은 다소 단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작가의 주장이 어떤 劇의 이미지로 떠오를 수도, 그래프의 형태 일수도, 다이어그램의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머릿속에선 여전히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내가 굳이 단편적이라고 한 것은, 대개의 경우 철학 책은 다소 어렵기 때문에 이미지화 작업이 문장마다, 문단마다, 챕터마다 독자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읽기를 통해, 책 한 권이 온전히 머리에 들어온다면, 철학 책 읽기 역시 칸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 한편을 머리에 만드는 것이 된다.


2.

읽기의 이미지화는 필연적으로 내게 존재하는 기존 이미지와 융합되는 결과를 낳는다. 독자의 과거 경험, 생각, 현재의 상황 등이 선입견이 되어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 영향을 준다. 이런 과거 경험과 선입견의 영향으로 완전히 다른 식의 읽기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같은 니체를 읽어도 전체주의자부터 혁명가까지 다양한 니체의 스펙트럼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읽는 행위 자체는, 읽는 이의 경험과 생각을 '읽은 내용(콘텐츠)'과 비교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입견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나의 지적인 한계에 따라 이해되기도, 이해되지 못하기도 하고, 내 기존 관념에 따라 전체주의로도, 혁명적으로도 읽히며, 나의 현실에 따라 내용을 민감하게 느끼기도, 덜 민감하게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