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맞춰가던 쇼펜하우어 철학의 뼈들, 뼈를 맞춰가던 나의 손이 느려지고, 권태를 느낄 때 나는 [특성 없는 남자]를 들었다. 한동안 같이 보냈던 시간은 나의 지성에 뼈의 윤곽을 만들었고, 뼈에는 같이했던 공간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당시엔 살을 붙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뼈에 불과했고, 그 희미한 뼈의 형상은 이어진 독서에 그대로 투영되어 독서를 재단한다.
철학은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하는 뼈의 구조물이다. 그리고 그 철학을 들고 [특성 없는 남자]를 읽는 것은 발골이 될 수밖에 없다. 울리히의 뻗어가는 생각을 잘라 버리고, 행위를 뜯어 구석에 처박아 버리는 폭력이다. 독서 중인 지금 - ‘특성 없음’이 일반화의 거부로 받아들여지는 지금(1권의 중간쯤) – 나는 쇼펜하우어(혹은 니체)의 용어로 [특성 없는 남자]를 읽고 있다. 하지만, 혹시, 나는 이 독서를 멈추기 위한 명분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은 철학보다 크다. 철학은 소설의 일반화일 뿐이다. 소설 속 뻗어가는 방사형의 생각을 어떤 철학도 담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