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까지 읽고서,
서사의 줄기가 느릿느릿 뻗어간다. 그리고 그 서사의 논리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충족이유가 되어 흐름과 함께 출렁인다. 이것이 일반적인 소설의 서사다. 하지만 [특성 없는 남자]에서 서사의 이유는 몇 개의 미묘한 동기로 분화하고, 탄탄한 근육을 붙이며 뿌리로 향한다. (근육은 묘사가 아니다. 묘사는 불어오는 바람, 스치는 향기처럼 변죽만 울리고, 피부에만 반응할 뿐이다. 근육은 표피를 떠 받치는 힘이고, 표피의 밑에 존재하는 본질이다.) 그리고 마침내 서사와 생각의 원류인 뿌리에 닿는다. 이것은 마치 삶의 원류이며 전능한 생명의 나무와 같은 느낌을 준다. 영혼과 몸, 이념과 국가, 과학과 정신의 문제는 다양한 층위에서 나무의 생장과 관여하는 삼투압의 힘이 된다. 나비 족들이 생명의 나무를 둘러싸고 행한 장엄한 의식에서 우리는 비록 나무의 잎과 줄기, 빛이 주는 외관에 집중하지만, 생명의 나무의 본질은 그 아래 더 몇 배나 풍성하게 뻗어있는 뿌리에 있다. 이렇게 무질은 삶의 원천인 생명의 나무와 그것의 구동력으로서의 뿌리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이 구동력 자체, 엔진 및 연소 기관의 분해, 연료에 대한 화학적 실험은 다음 글을 위하여 남겨두자, 현재의 나(1권을 겨우 읽은 나)로서는 지금 그 방대한 근육에 숨어 있는 본질을 씹어 소화하기엔 다소 벅차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뻗어간 이유들의 차이는 너무나 미묘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뜻 당시 무질의 상황에 비추어 그의 문제의식이 과도기 - 즉 귀족과 시민계급 공존, 의지에 대한 현실의 변화 가능성, 영혼의 문제, 이념의 문제 등 – 에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어느 정도 당시 유럽의 변방으로 존재하던 오스트리아의 정체성과도 부합하는 부분인데, 무질은 이런 환경적인 문제에 머물지 않고, 과도기적/변화의 환경이 가져온 생각과 정신의 변화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문제 인식은 ‘영원한 과도기’라는 문제의식을 달고 사는 우리에게 시공간을 넘어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