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술과 정치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느낌의 미술관]을 읽고

by YT

인상파로 넘어오며 미술은 소설(서사)의 지배로부터 독립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은 독립의 상징물이 되었고, 서사에 대항하여 회화의 독립이 선포되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회화는 나름 자치의 규율을 가지고, 자신의 규칙을 생산하며, 스스로 그 번영을 만들어 갔다. 혁명에 비유될 만큼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다. 인상파의 혁명은 매우 정치적이었고, 서서히 지배세력(아카데미즘)을 잠식해 들어갔다.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인상파 화가들의 정치 투쟁이 극적이다. 인상파가 싸우는 상대는 신고전주의의 거장 다비드와 앵그르. 선구자들이 그것을 인식하든, 아니든 세상은 주어진 상황에서 이니셔티브를 가지려는 사람들의 역사다.

인상파 정치 투쟁의 성공은 왕정이 무너지는 정치 변동기와 궤를 같이한다. 또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르주아의 탄생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정치적인 급변 속에 미술 구매 패턴의 변화가 있었다. 과거는 귀족이나 왕에 의한 주문 생산 방식이었으나, 이 시기에는 미술상이 등장하고, 귀족의 흉내를 내고 싶던 부르주아의 욕망과 맞아떨어지면서 미술품 거래가 번성하게 된다. 이때부터 미술을 사고파는 미술상의 비중이 현대 미술 사에서 매우 커지게 된다. 미술상, 그리고 그와 결합한 비평가는 미술의 이론적 이해를 도왔고, 신고전주의 미술과는 다르게 매우 거칠어 보이는 인상파의 미술을 부르주아의 선호로 바꾸어 놓았다. 새로운 계급에 맞는 새로운 미술의 탄생인 것이다.

또, 신 고전주의의 재현은 당시에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사진술의 시작과 충돌하면서 더욱 인상파의 개성 넘침에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고, 향후 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완전한 재현의 탈피) 이때부터 현대미술의 진정한 정체성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신고전주의와의 투쟁은 마네의 충격적인 도전에서부터 시작되어, 완전히 미술 정치 투쟁의 판을 엎어 놓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살롱(아카데미)에 도전하는 마네, 하지만 자신의 이상으로 계속 바라보았던 살롱, 그때 때 맞추어 등장했던 ‘낙선전’은 당시에는 미약했지만, 커다란 이슈를 만들고, (비록 그것이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궁극에는 인상파의 투쟁을 성공으로 이끌게 된다. 낙선전의 개최는 나폴레옹 3세의 결정이었지만, 낙선전 자체는 인상파에게 정치투쟁의 확실한 분기점을 만들게 된다. 인상파는 밀레의 고단한 노동과 쿠르베의 사실주의를 거쳐 빛의 화가 모네로 또 고호, 고갱의 후기 인상파로 넘어오면서, 탄탄한 정치적 승리를 맞보게 되는 것이다. 비록 당시에는 미천했지만, 그런 용감하고 외롭게 죽어갔던 장군들의 시체 위에서 인상파는 승리의 깃발을 흔들게 된다.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는 그간 내가 품고 있던 가설을 약간이나마 명확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회사에서 건, 아니면 작은 조직에서 건 정치 투쟁은 일어나게 되며, 성공하던 방관하던 실패하던 우리는 어차피 정치 투쟁의 장에 편입된 체 하루하루를 스트레스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느낌의 미술관]

표지의 그림 모델이 살바도르 달리 같아서, 심심풀이 땅콩처럼, 쉽게 읽힐 줄 알고, 가볍게 선택했는데, 실은 진중권의 책 보다 어려운 미학 책이었다.

나의 가설 - 세상의 모든 장은 정치 투쟁이다 – 을 다시 한번 확증해 주었다는 면에서 [느낌의 미술관]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현대 예술가(미술가)들은 마케팅에서처럼 경쟁의 판을 바꾸어 버렸다. 재현의 미술은 늘 대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실재와 비교되는 가치평가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 미술가들은 대상과의 단절을 통해, 온전히 색/질감/(새롭게 해석될) 형태 등을 통해, 평가와 가치의 영역을 온전히 캔버스 위로 이동시켰다. 어떤 경우에는 캔버스 위가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戰場의 전환은 정말 엄청난 정치 투쟁이며, 시대와 환경이 이를 밀어주고 뒷받침해 주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미술가들은 진절머리 나는 ‘잘 그렸니, 못 그렸니’의 ‘레드오션’을 벋어나, 기존의 가치 판단으로는 도저히 채점할 수 없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이다. 이것은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된 추진력이었고, 현대 미술을 관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최근에는 추상의 영역도 미술의 場 안에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보수적인 극 사실주의가 대표주자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어 본다.

어쩌면, 미술이 미학을 만들어 낸 것도 역시 정치투쟁의 필수적인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미술은 철학을 끌어들여서, 미술 비평가라는 직업을 만들었고, 미술 비평가는 이런저런 현대 미술의 현상을 탄탄하고, 어려운 이론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미술비평가는 현대 미술의 정치 투쟁을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된다. 그 외에는 소더비 같은 거대한 경매 그룹이 존재하고, 그들에 호응하는 소비자가 존재한다. 그 소비자들은 초창기의 조금 돈 많은 자본가의 위상을 벋어나, 이제는 재벌의 마나님으로 대표되는 아주 높은 수준의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미술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너무나 멀리 가버렸다. 마치 조지 포스터가 사는 엘레시움이 되어 버린 듯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