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by YT

환상을 이야기에 끌어들이는 이유, 방법 그리고 농도에 대해 고민한다. 사실과 실재가 서로 다른 개인에 의해 인식되고, 그 인식이 시간과 더불어 사유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모든 사실이 환상의 세례를 입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그래서 서사 속에서 환상은 분리, 구분되기보다는 필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환상은 작가의 사고와 감정을 미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실체다. 이제 서사에서 실재와 환상을 애써 구분하는 무의미하다. 문제는 환상을 끌어오는 방법과 그 농도에 있다.

켄 리우는 환상의 많은 부분을 Science에서 끌어오고 있다. 그의 정교한 과학장치들에 대한 묘사는 개별적인 과학 발견들을 잇고, 통합하면서 미래의 삶을 구성하지만 문제의식은 여전히 현재에 존재한다. ‘천생연분’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생각과 감정에 미치는 문제를 다루지만, 오늘날 개별적 인간이 저항하기 어려운 구조의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서는 타임머신이 가져다준 과거로의 여행의 의미를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논쟁적인 가치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과학의 발전에서 끌어온 이야기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사회가 마주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선견지명으로 느껴진다. 또 몸의 기계화로 인한 정신의 기계화를 다루는 단편들 역시 곧 마주할 현재에 대한 암울한(?) 메시지로 읽힌다. 또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 ‘송사와 원숭이 왕’에서 작가는 환상의 장치를 역사적 사건에 투영함으로써 과거 사건의 부당함과 기억에 대한 가치 평가를 현재로 불러온다. 그리고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은 일상의 삶에 환상의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모성과 이민자 집단의 적응이라는 다소 신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종이 동물원’에서 작가는 환상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하는데(살아 움직이는 종이 동물들), 이는 환상을 처리하는 방식과 농도에 있어 매우 주목할 만하다.

켄 리우가 환상을 처리하는 농담(濃淡)은 매우 다양하다. ‘종이 동물원’처럼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과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에서는 환상의 먹을 듬뿍 찍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그의 단편 전체에서 환상을 – 비록 Science를 끌어들일지라도 – 그리 진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단편에서 현재의 사고와 감정을 조금 더 증폭하기 위한 장치로 이야기의 구성을 약간 비틀고 있을 뿐이다. ‘종이 동물원’ 속 라오후(종이호랑이)의 가르랑거리는 목소리는 중국인 어머니의 사랑이고, 그녀의 숨(영혼)을 표현한다. 살아 움직이는, 너덜너덜 테이핑이 된, 버려진 체 먼지만 쌓인 종이 동물들은 이야기 내내, 어머니와의 관계 및 사랑과 병행한다. 작은 환상의 장치가 독자의 내면을 두드리는 울림으로 작용한다. 이에 반해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과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에서는 우주 지적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 전체가 환상으로 칠해졌다. 온전한 100% 환상으로 채워진 이 두 단편에서 독자는 두텁고, 찐득한 켄 리우만의 특별한 과학적 환상의 미감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환상100%는 개인적으로는 보르헤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와 ‘바벨의 도서관’이나 현호정 작가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에 비해 서사적인 구조가 약하다. 켄 리우의 환상은 마치 진한 먹으로 내리그어 표현한 산수화 속 외로운 검은 바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서사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이해에 기반한 그의 환상은 식도를 꽉 채워 넘어가는 쾌감을 오랜만에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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