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 스스로에게 보내는 이 질문은 하나의 욕구를 낳는다.’ (25페이지) – 한번 읽기를 마치고 두 번째 읽기에 들어가기 전 그는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네이버와 유튜브에서 검색했다. (이 행위는 딱히 자신의 읽기를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그만의 ‘오류수정’ 과정이다.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관점이 정답은 아니지만, 점점 외골수로 빠져드는 것 같은 그의 감상을 조정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는 1977년(그녀가 사망한 해) 브라질의 어느 방송국과 갑작스럽게 성사된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듯 진행되는 오래된 흑백영상에서 그는 [별의 시간] 탈고 후, 아직 그 진한 여운에서 벋어 나오지 못한 작가를 보았다. 인터뷰에서 클라리시는 그가 읽기를 통해 세운 마카베아와 호드리구(소설 속 중요한 주인공 둘)의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듯한 그녀의 눈빛과 ‘모르겠다’는 대답의 혼란 속에서 그는 마카베아의 모습을 보았고, 연신 담배를 물어대고, 어떤 경우엔 단호한 그녀의 대답에서 호드리구의 신경증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별의 시간]을 읽은 사람이라면 꼭 이 인터뷰 영상을 보길 바란다. 전체적으로 클라리시의 관점과 생각을 알 수 있지만, [별의 시간]에 대한 작가 후기의 느낌도 담고 있는 영상이다.)
[별의 시간]은 두 개의 관점이 하나로 통합되며 공명한다. 클라리시의 독창성과 탁월함은 여기에 있다. 하나의 관점은 마카베아를 중심으로 흐르는 서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마카베아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호드리구의 참여와 생각과 관점에 대한 것이다. 이 두 서사는 병치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리시의 글쓰기 전략 속에서 하나의 호소와 의미로 모아진다. 그가 읽기를 쓰기화 하면서 시도하려는 실험을 클라시는 50년 전에 이미 실행에 옮긴 것이다.(좌절) 그래서 그는 그녀의 글쓰기 방식을 모사해 보려 한다. 얼핏 호드리구를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로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호드리구는 남자다. 클라리시는 일부러 이야기 속 호드리구를 자신과 같은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배치하고 있다. 이것은 ‘일기+소설’의 구성을 ‘소설+소설’로 만든다. 소설에 일기적인 요소를 넣으면 작품의 형태가 애매해지지만, 일기를 소설로 바꿔 버림으로써 클라시시는 진정한 ‘이중허구’를 완성한 것이다. 이런 그녀만의 독특한 글쓰기 태도 때문에 ‘문학을 통해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작가’라는 마케팅적 문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도 이 문구를 이해하기 위하여 [별의 시간]을 구입했다.)
소설의 구상 이유에 대해 클라시시(인터뷰 영상에서)도 호드리구(소설 속에서)도 우연히 마주한 리우데자네이로 북동부 어느 여성의 공허한 눈빛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눈빛은 마카베아화 된 클라리시의 눈빛과도 닮은 듯하다. 그는 처음에 마카베아를 `순수 결정체’로 인식했다. 하지만 생각의 부재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또 관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호드리구가 묘사한 ‘우연한 존재’가 더 어울리고 이것은 마치 현대 게임 속 NPC에 더 어울리는 존재인 듯 느껴진다. 생각 없이, 욕망 없이 그냥 사물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마카베아. 호드리구는 소설가답게 이런 마카베아에 사소한 장치(치즈를 넣은 구아바 젤리, 일요일의 화물선, 엔리코 카르소의 ‘우나 푸르티바 라크리마’, efemeride라는 단어, 시계 라디오, 남자친구 올림피구의 등장, 마담 카를로타의 예언등)를 통해 욕망을 주사한다. 점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그래야 기승전결을 갖춘 소설이 된다.) 그렇게 작은 욕망으로 울렁이던 마카베아는 마담 카를로타의 예언을 통해 욕망이 희망으로 폭발한다. 이것은 순수함의 폭발이기도 하고, 분자가 원자로 쪼개지는 순간이며, 천각형의 별이 희망의 환희로 쪼개지는 별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폭발의 순간에 호드리구는 자신의 생각 속에서 이 상황을 고요의 순간으로 꺾어버리고, 마카베아를 하나의 무심한, 우연의 별로 하늘에 박아버리고, 고요(신의 시간)로 돌아온다. 희망과 욕망이 극(極)에 달하여 폭발하면 우리는 고요한 신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그래’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마 이 소설을 마치고 호드리구는 제철 맞은 딸기를 먹으며,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