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3.

5부 ‘성과 오두막’ – 300페이지, 정체성에 대하여

by YT

여행은 분석과 종합의 틀로 타인의 알맹이, 정체성(혹은 특성)을 사유하며 평가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유를 통해 잠깐 통과하는 국가의 특정한 경향이 묻어나고, 민족의 고유한 특성이 드러나며, 만나는 개인의 개성이 수면으로부터 떠오른다. 이러한 포괄적인 정체성은 언어, 문화 및 관습으로 받쳐지고 외부로 드러난다. 이렇게 설명되는 정체성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마치 호수 안쪽에 반짝이는 알맹이로 숨겨진 것처럼 보인다. 이 숨어버린 정체성을 깨기 위하여 분석과 종합의 틀, 사유하는 이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교류의 시기, 정체성과 정체성의 대립이 첨예한 시대에 정체성은 어떤 모습을 갖추기를 요구받는다. 이 시대에 정체성은 쑥스러운 미덕이 아니라 불행의 씨앗이 된다. 다름은 편안히 평화적으로 가치중립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 차이는 낙차를 가지고, 낙차는 흐름을 만들어 내고, 흐름은 정체성 A가 정체성 B로 폭주하게끔 한다. 이것은 현실적인 갈라 치기인데, 이는 어쩌면 이스라엘의 신 야훼가 세상을 운영하는 비정하고 비밀스러운 운영 비법 중 하나인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수사적이기만 한 차이와 다름을 극복하고, 정체성간의 흐름을 끊어 진정한 다름의 평원을 인식에서 현실로 확장할 수 있을까? 이것은 오직 우리의 세상이 지구에 머무르지 않고,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우주로 확장되었을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을 듯하다. 강력한 우주적 타인의 존재만이 지구 행성에서 조각나 파편으로 흩어진 각각의 정체성을 하나의 판으로 단단히 이을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모든 개인을 평평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술의 진보가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논리는 마치 히틀러의 제3 제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 공영권의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통합을 이루기에 세계는 너무 넓었고, 이들의 손은 너무나 작았다. 어려운 상황과 사건의 통제는 통제자의 손아귀에 진정 모든 것이 통제되고, 제어될 때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적 차원에서 세상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개인, 사회, 국가, 민족의 욕망과 정체성을 넘어 거대한 지구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담보될 때, 지구는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각각 다른 층위의 정체성은 비로소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우주의 먼 곳에서 내려다볼 때, 현재 벌어지는 다양한 정체성의 대립은 너무나 미시적인 사소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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