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과 닭
달걀과 닭을 둘러싼 유명한 화두는 인과에 기반한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선후관계를 밝히는 오래된 논쟁이다. 에세이 형태로 정리한 리스펙토르의 화제 역시 이 익숙한 논쟁의 확장판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사유는 우선순위보다는 달걀과 닭의 관계에 집중한다.
글의 앞 반정도에서 달걀은 삶, 생명, 영혼으로 상징된다. 하지만 이때의 영혼은 개별성이 아닌 일반성, 보편성, 편재하는 공통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달걀은 보다 관계적인 측면에 놓임으로써 그(神)의 의도 속에서 키워지는 ‘우주적인 섭리’ 비슷한 것이 된다. 리스펙토르는 인터뷰에서 그녀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글로 ‘달걀과 닭’을 꼽았다. 이 글은 달걀에 대한 관조에서 시작하지만, 그 관조는 신의 섭리로 까지 확장한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우리의 거친 반항조차, 무신론의 관점조차 거대한 신의 섭리에 포섭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렴풋이 바라본 대가로 첩보원의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어렴풋한 그의 지시에 반항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항도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하는 명제가 드러내듯이, 주체가 대상에 포함되는 모순에 빠져버린다. 이것이 바로 신의 섭리다. 비로소 나는 목적이 아님을, 수단에 불과함을 섭리와의 관계 속에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달걀을 의식하지 않고, 잊고 분주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달걀과 닭’의 뒤에 이어지는 ‘사랑’이라는 단편 소설은 달걀에 대한 인식에 약간의 힌트를 준다. 어떠한 연유로 장바구니 속 달걀이 깨어지면서, 가지런히 정리된 주인공의 삶은 알 수 없는 혼란과 두려움으로 빠져든다. 이때 달걀은 삶을 지탱해 주는 섭리, 운명으로 해석될 수 있고, 그것의 명확함/질서 정연함이 깨져 버림으로써 주인공은 일시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버린다. 외관상 매우 암울해 보이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순간순간의 혼란은 그녀의 삶을 깨트리고, 그녀를 두려움에 넣어버린다. 리스펙토르 글쓰기의 원동력은 이런 불안과 불안을 대하는 민감함이다. 그 민감함은 사소한 달걀에서 조차 세계와 신을 발견하게 하는 글쓰기를 위한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