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와 눈싸움 중이다. 아무래도 지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글감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떠도는 문장들이 휘발되기 전에 글로 옮기고 싶어서 얼른 노트북을 켰다. 모니터에 빈 문서를 띄워 놓고 아무 글자도 담기지 않은 여백을 노려보며 첫 문장을 기다렸다. 키보드 자판 위에 가지런히 올려 둔 열 손가락이 하릴없이 움찔거리기만 할 뿐, 그다음 갈 길을 찾지 못했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백지와 눈싸움을 먼저 한다. 빈 노트를 펼쳐놓았든, 컴퓨터 화면에 한글 문서를 띄워 놓았든,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어 놓았든 빈 화면을 마주하게 된다. 거의 숙명적으로. 네이버 검색창에 시험 삼아 ‘작가들’과 ‘빈 화면’을 동시에 입력하니 역시 빈 화면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쓰는 이’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수많은 작품을 섭렵한 까닭에 ‘첫 문장’의 위력을 무척 잘 알고 있는 우리(나를 비롯한 여러 필자들)는 그만큼 그럴듯한 문장으로 글의 서두를 풀어내고 싶은 것이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그렇게 아무것도 완성을 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 특히, 취재를 의뢰받아 진행하는 원고 작업은 당연히 마감 기한이 있어서 초고의 첫머리가 떠오르지 않을 때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하다. 급기야 한 장의 원고도 쓰지 못해 클라이언트가 쏟아내는 욕을 잠자코 받아내고 있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나의 프리랜서 인생은 여기서 끝이구나,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럴 때면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rester)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 올린다. 한때는 위대한 작가였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은둔자가 된 노작가 ‘윌리엄’과 문학적 재능을 가진 소년 ‘자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 속에서 윌리엄은 자말에게 작문의 첫 번째 열쇠가 ‘그냥 쓰는 것’이라고 툭 던지듯 말하며 경쾌하게 타자기를 두드린다. 생각은 나중에.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으니 흐름을 따라가라는 말처럼 들렸다. 물론 마음 가는 대로 쓰다 보면, 버려지는 문장들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빈 화면의 두려움은 여백을 어떤 문장으로든 채워서 극복해야 한다.
예전에 까치가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드는 걸 구경한 적이 있다. 그들은 어디선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와서 둥지의 뼈대를 만드는 중이었다. 나뭇가지를 요리조리 옮겨가며 위치를 잡다가 아래로 떨어뜨리기 일쑤였는데, 그러면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는 버려두고 새 나뭇가지를 찾아 어디론가 날아갔다. 나무 아래에는 잔가지들이 수북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떨어진 걸 다시 주워 쓰지, 왜 저렇게 고생할까? 어느 세월에 다 지으려고 그러나.' 아직 엉성하기만 한 까치의 둥지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카페에 갈 때마다 까치집을 살펴보곤 했다. 놀랍게도 그동안의 걱정이 무색하게 그 어떤 강풍에도 날아가지 않을 만큼 튼튼하고 아늑한 둥지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까치는 어떻게 해야 좋은 둥지를 만들지 고민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나뭇가지를 버려가며 자기만의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는 걸.
여전히 글을 쓰기 전 백지를 마주하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첫 문장을 잘 뽑고 싶다는 욕심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나 생각은 나중에 하고 그냥 손가락을 움직여보기로 한다. 화면 바깥으로 실패한 단어와 문장들이 쌓여간다. 다시 새로운 문장을 길어 온다. 누군가의 안온한 둥지가 될 한 편의 글은 아직 엉성하지만, 언젠가 견고해질 것이다. 빈 화면을 앞에 두고 손가락을 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