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고
최근 새집으로 이사를 한 지인은 ‘이번에는 정말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아이 둘을 포함한 네 식구의 살림은 해마다 증식해서 지인의 집은 어딘가 어수선하긴 했었다. 이전보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지인의 소망도 어느 정도 이루어질 조짐이 보인다.
유튜브나 TV를 통해 지나치게 많은 물건 때문에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전문가에게 의뢰해 공간을 재구성하고 일상의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언급한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 또는 ‘비움’이다. 그들은 의뢰인의 집 안 구석구석에 들어찬 물건들을 꺼내 늘어놓고 버릴 것과 남길 것, 나눌 것 등을 선별한다. 의뢰인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한참을 망설인다. 대개 두 가지의 이유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데, 나중에 필요할 것 같다는 점과 추억이 가득 서려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 역시 두 가지의 이유로 물건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물건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인지 다행히 물건이 많은 집에 얹혀사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주기적으로 대청소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나는 ‘방을 뒤엎는다’라고 표현한다.
나의 청소 루틴은 대강 이렇다. 가장 먼저 방 안 구석구석을 뒤져가며 온갖 잡동사니를 방 한가운데 집합시킨다. 그리고 발 디딜 틈이 없어진 방바닥을 까치발로 오가며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한다. 그러다 보면 실생활에는 정작 쓸모도 없는데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버리지 못했거나 오래전에 행방이 묘연했던 의외의 물건들이 툭툭 튀어나와 “넌 나를 잊었겠지만 난 아직 너를 기억하고 있어.”라며 빤히 올려다본다. 그럴 때면 나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애틋한 눈빛으로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무심코 귀를 기울인 라디오에서 반가운 옛 노래가 흘러나와 지그시 볼륨을 높이고 익숙한 선율을 따라 과거의 시간을 더듬듯이. 그래서 나의 청소는 느릿하게 진행된다.
최근에는 크게 마음을 먹고 많은 물건을 버렸다. 수년을 걸쳐 친구들에게서 받은 편지와 엽서들, 한때는 열렬하게 사모해 마지않았던 연예인들의 사진, 연습장에 손으로 쓴 유치하고 어설픈 소설들, 항상 중간에 포기하게 된 외국어 공부의 교재들 등등. 나중에 쓸 것 같아서, 추억이 서려 있어서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물건들은 과거와 미래에 갇혀 현재의 쓸모를 잃어버린 것들이다. 그들은 원래의 역할을 빼앗긴 채 부질없는 나의 욕심으로 우두커니 방치되어 왔다. 어쩌면 나 역시 그렇게 삶을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간직했던 물건들이 있어야 소환할 수 있는 추억이라면, 그냥 잊는 게 나을 것이다. 소중한 추억은 사물에 기대지 않고도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나중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모아둔다는 것은, 인생이 갖는 예측 불가능성의 묘미를 포기하는 일이 된다. 삶을 미리 재단하고 계획하면 뜻밖의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막힐지도 모른다. 과거와 미래에 갇힌 물건들은 비운다. 내 마음에서도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몰아낸다.
매번 청소를 끝내면 방안에 벌렁 누워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공간이 확 달라졌다는 느낌 같은 건 전혀 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는 있다. 버릴 것은 버렸고, 남길 것은 남겼다. 오늘 청소를 해도 내일이면 다시 먼지가 뽀얗게 앉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여 쓸고 닦아야 할 것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며. 나날이 아름다운 순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