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의 시절

불편함으로부터 멀어지는 법

by 착한마녀

4년 전, 갑자기 허리가 아팠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자주 허리를 구부려서인 것 같았다. 점점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몸의 통증이 마음까지 어둡게 만들었다. 기분은 자주 가라앉았고, 수시로 우울해졌다. 나이 40이 넘어서까지도 몸을 돌보지 않은 값을 톡톡히 치르는 것만 같았다.



동네 헬스장을 알아보다 여러 가지 혜택의 유혹에 못 이겨 1년 등록을 해버렸다. 혜택 중에 무료 요가 수업이 있었기에 호기심에 요가를 시작했다. 그것이 나와 요가의 첫 만남이다.

처음 요가 수업한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놀이동산에서 360도 회전하는 놀이기구를 타고 내려온 것처럼 혼이 나가 있었다. 똑같이 동작을 따라 하지도 못했고 그저 슬쩍슬쩍 흉내만 내면서 뒤 따라가듯 50분을 보냈을 뿐인데 내 몸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구석구석이 다 아팠다.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속도 울렁거렸다.


‘역시 내 몸은 운동할 몸이 아닌가 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멍했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유연하게 동작을 따라 하던 사람들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시원하게 팔, 다리를 뻗고, 흔들리지 않게 버티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결국 쑤시는 몸 여기저기를 토닥이며 몇 번 더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힘겨운 첫 경험으로 시작된 나의 요가는 어쨌든 시간이 흘러 지금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1년 치 등록을 했다고 했을 때 ‘얼마나 가겠냐’며 비웃던 남편 때문에 오기로 버텼다. 그러는 사이 하루하루 요가는 내 몸과 조금씩 친해지고 익숙해져서 지금까지 좋은 친구가 되어 내 생활 속에서 아주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첫 수업 후 요가를 다시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요가는 내 기억 속에 아주 힘든 운동이라는 추억만으로 간직된 채 나와는 아주 멀리멀리 떨어져 있었겠지?



식물을 키우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식물을 키울 때에는 잘 키우지 못하고 초록별로 보내야만 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식물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였다. 계속 키우며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절로 지식과 지혜가 생기니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와 궁합이 맞는 식물도 찾게 되고, 우리 집 환경에 맞는 식물들도 알게 되면서 지금은 식물들과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요가도 식물도 처음에 다 나와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불편하고 다가가기가 꺼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해볼까?’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면 어느새 친근해지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저 충분한 시간과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내게 요가와 식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뭔가가 불편할 때. 그때가 바로 내가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불편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살찌우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처음 요가를 했을 때의 불편함, 처음 식물을 키울 때의 어설픔.

어떠한 일이든 그 삐걱거리는 순간들을 잘 넘기려면 불편하고 어색한 만큼 참아내야 하는 시간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커다란 선물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