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공연관람이 취미가 될 수 있도록

장래희망 : 베리어프리 공연 기획/연출가

by 객석의 감각

베리어프리 공연을 만드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다.


시작은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이전에는 문화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는 시간] 영상에서 "장애인도 공연을 보고 싶어 하나요?"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을 마주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기 전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 함께 감동받고 웃는 모습을 보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조금은 막연한 꿈에 불과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는 나를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대학생 시절에 썼던 글(2021년 작성)

- 성균관대학교 <창의적 글쓰기> 강의 과제물에서 발췌


[음표 – 두둥~ 둥], [탁! – 부채소리], [음표 – 불안한 국악 시작]


영화관 자막이 이렇게 쓰여 있다면 우리는 ‘뭐 저런 것까지 써놓고 난리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작 ‘저런 것’이라고 칭하는 지나치게 섬세한 자막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시청각 장애인이다.

우리는 카페, 지하철, 마트 정도의 장소에서는 그들을 꽤나 자주 만나곤 한다. 하지만, 영화관이나 콘서트장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시청각 장애인은 상상하는 것부터 낯설다. 눈을 감고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공연을 만드는 건 너무나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옆자리에서 그들이 공연을 즐길 방법이 있다. 귀로 보면 되고, 눈으로 들으면 된다.


실제로 장애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수어 통역이나 자막과 함께하는 공연이 종종 열리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배리어 프리 콘텐츠라고 부른다. ‘배리어 프리 콘텐츠’란 장벽(Barrier)과 자유(Free)가 합쳐진 단어로 장애인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된 콘텐츠를 일컫는다. 앞서 보여준 자막도 온라인 연극 ‘오셀로와 이아고’에서 활용된 자막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오, 대한민국에서도 배리어 프리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구나. 대단하군.”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양과 질이다.

해외의 경우, 전시회장에서는 촉각으로 원작을 느껴볼 수 있도록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공연장에서는 어느 좌석에 앉아도 편히 자막을 볼 수 있도록 스마트 안경을 도입했다. ‘자막 및 수어 제공’이라는 표시를 적어두고 배리어 프리 콘텐츠로 분리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되는 장면이다. 이런 실태는 보건복지부의 2020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문화 및 여가 활동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약간 불만족이 42.1%, 매우 불만족이 15%로 만족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¹ 단지 수어 통역자가 함께하거나, 자막을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는 적은 양의 배리어 프리 콘텐츠로는 완벽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2026년 현재는?

2021년에 썼던 실상에 비해, 지금은 우리나라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각종 공연에서 접근성 매니저를 마련하거나, 아주 드문 일이지만 우퍼가 느껴지는 조끼나 심신 안정을 돕는 조끼 등을 제공하는 공연이 있다.

그런 공연들이 조금씩 생겨남에 따라, 나의 버킷리스트 [베리어프리 공연 만들기]는 더 뚜렷하고 구체화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공연이 아닌, 장애인'도' 즐기는 공연

진정한 유니버설 콘텐츠로 향하려면 특정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마음가짐부터 버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배움 또한 대학생 시절 시각장애인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 [소리마켓]의 CEO를 인터뷰하면서 얻은 것인데, 이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풀겠다.)

그러니까, 공연에서는 비장애인이 즐길 때도 '오, 오히려 좋은데? 이러니까 훨씬 편하고 재밌는데?'라고 느낄 수 있는 형태의 연출이 필요하다.

모두가 같이 있기에, 더 가치 있는 공연


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내뱉을 수 있는 공연을 언젠가 꼭. 선보이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전 글에서 나름의 칭찬을 적었던 《100개의 키보드》 공연에서도 좀 더 개선하고 싶은 것들이 보인다.


만약, 공연 《100개의 키보드》를 눈을 감고 듣기만 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들리지 않는 채로 보기만 했다면, 현장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키보드를 유의 깊게 살피는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다면?


그런 관점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이면서도 몇몇 개선할 여지가 보이는 공연이었다. 먼저, 휠체어를 타고 지속해서 돌아다니면 다소 어수선할 수 있으니, 공연의 일부에서는 사람들은 멈춘 채 휠체어 이동 시간을 만들어주고, 휠체어 지정석을 마련하고,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실시간 카메라 시선을 화면으로 만나며 다른 사람의 눈을 체험할 수 있으면 좋았겠다.


다음으로는, 화면을 띄우는 김에 키보드의 사운드를 시각 그래픽에 연결하여 영상화하고 틀어주면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이지만 명확한 차이를 구별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섬세한 변화를 더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키보드 하나하나의 소리가 쌓일 때
작은 진동으로 새로운 키보드의 소리가 시작됐음을 알려줬다면 멀리서 바라보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채 즐겨야 하는 사람들도 훨씬 몰입도 있게 즐길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공연은 애초에 베리어프리 공연으로서 제작된 것이 아니었기에 이러한 점들을 ‘아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좀 더 권위 있고 재력 있는 연출가였다면 연주자를 설득해 약간은 새로운 형태의 공연으로 재탄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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