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그림을 그리다

장승업과 프랜시스 베이컨

by 김향금
장승업, <호취도>, 종이에 담채, 135.5×55.3cm, 조선 말기

"술기운이 붓끝에 번지자, 매가 살아났다. 휘청이는 선마다 생기가 돌고, 바람이 지나갔다. 술과 혼이 한몸이 된 순간, 그림은 인간의 품을 떠나 자연의 기세로 날아올랐다."


화가들은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워밍업이 필요하다. 클래식을 듣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설거지를 하거나 명상을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술을 통해 작업에 시동을 거는 화가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이성의 장벽을 예술적 감각을 깨우는 데 술만 한 것도 없다.


장승업의 술과 베이컨의 술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오원(五園) 장승업(1843~1897)은 '취화선(醉畵仙)'으로 통했다. 그만큼 술을 에너지 삼아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는 술잔이 비워질수록 붓질이 살아났다고 했다.

하루는 술에 취해 주막에 쓰러져 있다가, 기왓장에 일필휘지로 용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때로는 젓가락이나 손가락을 붓처럼 휘둘러 매화와 새를 즉흥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림은 거칠면서도 기운이 살아 있었다. 어쩌면 그는 붓이었고, 술은 먹이 아니었을까. 먹물 같은 술에 자신을 묻혀 퍼포먼스하듯이 화선지에 뛰어든 것만 같다.

그림의 배경에는 술기운이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에 취한 혼돈 속에서도 화면에는 압도적인 생기를 토했다. 술은 그에게 억눌린 기운을 깨우는 죽비였다.

장승업, <호취도> 부분 이미지

잠재된 본능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술을 이용한 페르시아인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폐르시아인들은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술기운을 빌리곤 했다. 먼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고, 다음 날 술이 깬 정신으로 그 결정을 다시 검토했다. 왜 그랬을까. 본능적 결정과 이성적 판단을 함께 거쳐야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술에 취했을 때는 본능이 앞서고, 술이 깬 후에는 이성이 활동한다. 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예술가에게 술의 역할도 이와 같다. 술이 열어주는 즉흥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오고, 다음 날 냉정한 눈으로 그것의 효과나 진정성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서양 미술사의 별이 된 빈센트 반 고흐,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클로드 모네, 잭슨 폴록, 툴루즈 로트렉.....모두 술을 사랑한 화가들이다. 섬나라 영국의 화가 중에는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이 있다. 그도 애주가에, 폭주가였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사실에는 자기 파괴적인 폭력이 깃들어 있다.”고 했듯이, 그는 런던 소호의 술집에서 밤마다 광기를 분출시켰다. 베이컨에게 술은 자기 파괴의 방식이기도 했지만, 작업을 가능하게 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는 캔버스 위에 인간의 몸을 해부하듯 찢고 비틀며 자신이 본 존재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끌어냈다. 술은 용기의 도화선이었고, 억눌린 본능을 폭발시켜 화면으로 밀어 올리는 매개체였다.

프란시스 베이컨,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에 대한 연구>, 캔버스에 유채, 153×118cm, 1953년

"빛의 장막이 교황을 가두고, 권력의 왕좌에서 교황은 신이 아닌 공허를 외친다. 황금빛 의자의 감옥이 비명보다 깊은 소리로 어두워진다."


술이 격발시킨 그림

술은 예술가에게 향략을 넘어선 것이다. 술은 창작에 대한 무언의 의식이며, 내면의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비록 장승업과 베이컨이 서로 다른 세계와 시대에 살았지만, 술 앞에서 그림을 터뜨리는 방식만큼은 형제처럼 닮았다. 장승업은 취기 속에서 즉흥을 폭발시켰고, 베이컨은 술기운을 빌려 인간이 지닌 불안과 절망을 진하게 드러냈다. 술은 두 예술가에게 말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을 자극하는 공통의 언어였다. 그들의 그림은 깊고 멀리 울려 퍼지는 메아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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