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세상이 멀어졌다.
누가 끊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문을 닫았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돌아감이었다.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가슴속으로 천천히 내려 가는 일.
한 달 가까이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럴 때 작업실은 작은 성이 된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 하나 있는 성.
나는 자진해서 유폐되었다.
식사도, 잠도, 모든 생활이 성 안에서 펼쳐졌다. 시간은 고여 있는 듯했지만, 고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서서히 번져갔다.
하루치 소음이 사라진 밤이었다. 순간, 고요가 깊어지면서 오히려 차가운 떨림이 일었다.
심연의 고독이 이런 것일까. 숨조차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납덩이 같았다. 나는 정적의 가장 깊은 층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멈춰 있는 듯했지만, 정지 속에서도 시간은 미세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치 얼음 속을 통과하는 빛처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요는 다시 나를 움직이게 했다. 둔해졌던 손끝의 감각이 살아났다. 감각이 깨어나면서, 몸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붓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내밀한 호흡이다.
다시, 모든 것이 멈추는 또 다른 순간이 온다. 의도의 경계도, 감정도, 계획도 사라진다. 그즈음에 나는 사라지고, 캔버스만 남는다. 나는 ‘홀로움’과 ‘플로우’의 경계에 선 존재다.
고요 속에 감각이 눈을 뜬다. 멈춤 속에서 새로운 흐름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