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작업에 관한 45편의 단상(6)

by 김향금


그림을 그리는 일은 때로 불가능한 벽 앞에 서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왜 그리느냐 묻지만, 작업을 한다는 것은 분명한 이유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아도, 설명되지 않아도 멈출 수 없는 행위. 그럼에도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 산다. 화면 속 정보는 쉴 새 없이 갱신되고, 마음은 자주 길을 잃는다. 세상의 속도가 빠를수록, 내 안의 속도는 더디게 느껴진다. 그럴 때 작업은 잠시 멈춰 서게 하는 힘이 된다. 붓을 드는 순간, 세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비로소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게 된다. 그 질문이 바로 작업의 시작이다.


붓을 든다는 것은 단지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캔버스 앞에 선 순간,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 붓이 움직일 때마다 생각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하고, 그 감각이 다시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 멈추면 다시 시작하고, 지우면 또 그리고 그린다.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형태가 생기고 형태를 따라 마음이 정돈된다. 그 과정이 바로 작업의 진행이다.


겉으로 보면 그런 반복은 고독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행위다. 손끝의 온도, 물감의 냄새, 붓이 캔버스를 스치는 소리 같은 모든 감각이 지금 이 순간을 뚜렷하게 증명해 준다.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감각 속에서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예술 행위는 세상을 잊는 일이 아니라, 다시 느끼게 하는 일이다.

작업은 무엇일까. 반복은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다. 겹겹이 쌓인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다. 그것은 비워내기 위한 훈련이며,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의식이다. 예술은 무언가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벗겨내며 무(無)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예술에 완성은 없다. 다시 시작될 뿐이다. 질문처럼, 호흡처럼, 작업은 그렇게 계속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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