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지 않기 위해 남기는 것

by 김향금

작품이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은 희망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업을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안다. 작품은 남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남겨진 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몫이 된다.

예술가는 생전에도 가족에게 부담이 된다.

불규칙한 시간, 예측할 수 없는 수입, 몰입과 소진의 반복. 작업은 늘 삶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그 여파는 함께 사는 이들에게 축적된다. 사후까지 그 무게를 이어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미화된 태도가 아니다.

아카이브를 시작한 이유도 더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작품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전제로 존재하는지, 어디까지가 작업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지. 이 설명의 책임을 타인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구조를 남기려는 선택이다.


그래서 세계관을 만든다.

세계관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한계 설정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를 미리 정하는 구조다.

작품들이 서로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최소한의 좌표,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 장치, 선택만 남겨두는 설계. 아이들은 작품을 해석하지 않아도 되고 다만 결정만 하면 된다. 그것이 남기고 싶은 방식이다.


유산은 무엇을 남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떠넘기지 않느냐의 문제다. 정리되지 않은 흔적, 설명되지 않은 의미, 선택을 대신 요구하는 감정. 그것들을 남기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작업이 오래 남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는다면 정돈된 상태로 남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삶을 점유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작업은 천천히 쌓일 것이다.

이것이 기본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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