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방〉
그들은 서로를 마주하지 않는다. ‘뉴욕의 방’은 인간 사이에 드리워진 ‘심리적 거리’를 시각화한 풍경이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에게 닿지 못할 때가 있다. 호퍼는 바로 그 불가해한 순간을 붙잡아, 그림 안에 정지된 듯 남겨두었다.
"인간의 삶은 욕망과 그것의 실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추와 같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나는 한동안 그 추에 매달려 흔들렸다. 욕망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알지 못한 채, 타인의 말에 휩쓸리며 나 자신을 잃었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조차 결핍과 허기에서 비롯된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포장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포장은 벗겨지고, 그 아래에 남는 것은 늘 같다. 채워지지 않은 갈망, 혹은 욕망의 그림자.
니체는 말했다. "본능을 억제하려 하지 말고, 그것을 직면하고 길들여라."
억제하거나 외면한 욕망은 결국 다른 형태로 분출된다. 그것이 중독이 되고, 불안이 되고, 관계의 소모적 집착이 된다.
최근 나의 작업을 돌아보면, 물감의 층위와 질감이 곧 내 욕망의 언어였다. 덧칠된 색 사이에서 드러나는 균열, 지워낸 흔적 속에서 남겨진 자국이 나의 불안과 결핍을 증언한다. 나는 그 표면을 바라보며 욕망이 어떻게 형태로 남는지, 또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배운다. 그렇게 남겨진 흔적들은 곧 ‘결 시리즈’가 되었다. 욕망이 결이 되고, 결은 다시 나의 언어가 되었다.
작업을 하고 나서야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볼 용기를 얻었다. 욕망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자, 나락으로 끌어내릴 불씨다. 그러나 그것을 자각하고 조율한다면 욕망은 더 이상 나를 삼키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것이 된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작품 <뉴욕의 방>이 떠오른다. 도시의 한복판, 고요한 방 안에 남녀가 있다. 피아노 건반이 눌린 순간에도 둘은 서로를 외면한다. 침묵 속에서 각자의 존재만이 뚜렷하다. 욕망과 열망으로 시작된 관계가 결국 일상의 정적 속에서 말없이 평행선을 긋는다. 붉은 카펫과 여인의 드레스는 여전히 열정을 상징하는 듯하지만, 정적은 다른 말을 속삭인다. 뜨거운 감정이 지나가면 욕망도, 사랑도 결국 하나의 '거리'로 환원된다. 그 거리는 물리적이 아니라 심리적 거리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서로의 내면에 닿지 못할 때 우리는 마음의 거리를 절감한다. 생각과 욕망이 교차하지 않을 때, 같은 방 안에서도 사람은 끝없이 멀어진다. 그것이 호퍼의 방에 흐르는 냉랭한 공기의 정체다.
이 작품은 결국 묻는다. 욕망과 사랑은 어떻게 서로를 닮고, 또 어떻게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가. 방 안에 가득한 정적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방’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그 거리에서 멈추지 않으려 한다. 욕망을 숨기지 않고, 그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 에너지를 예술처럼 감각하고, 철학처럼 사유하며, 삶의 방향으로 길들인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욕망이 없다면 삶도 없지만,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사랑이 나눈 거리
욕망은 이제 나를 삼키는 불씨가 아니라, 내 삶을 밝히는 불빛이다. 나는 욕망의 얼굴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과 함께 걷는다. 언젠가 ‘호퍼의 방’처럼 고요한 풍경이 찾아오더라도, 그 침묵에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을 기억하며 나아갈 것이다.
‘호퍼의 방’은 말한다. 욕망은 왜 사랑을 닮았을까? 가까이 있어도 멀어지는 그 거리 속에서, 여전히 서로를 향해 흔들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