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 멈춤 속에서 배우는 것

by 최영미

기억에는 향기가 있다.

커다란 가마솥을 달구기 위해 맹렬히 타는 장작 향,

포슬포슬하고 고소하게 익어가는 콩 향,

포일에 싸여 불에 던져진 달달한 고구마 향,


향기가 집안 가득 퍼지면

입안 가득 따뜻함이 채워진다.


치대고 으깬 콩을 탕탕 바닥에 치며

할아버지 목침 크기로 만들다보면

어느새 메주는 일렬종대로 안방 가득 줄을 선다



큰 눈이 내리는 시기, 대설(大雪)

하늘은 점점 낮아지고,

세상은 더 조용해진다.

소리는 줄어들고,

움직임은 느려진다.

눈이 쌓이면 길이 막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어쩌면 이 계절은

세상이 스스로 멈추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대설이 되면 농사는 사실상 멈춘다.

밭은 얼어붙고,

더 이상 씨를 뿌릴 수도, 거둘 수도 없다.

그래서 이 시기를 ‘농한기’라고 부른다.

농사가 한가해지는 시기.

하지만 그 ‘한가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과는 다르다.

겉으로는 멈춰 있지만

그 안에서는 또 다른 일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메주쑤기다.

콩을 삶아 으깨고,

덩어리로 빚어 묶어 말리는 과정.

그렇게 만들어진 메주는

시간을 지나 발효되고,

된장과 간장이 된다.

한순간에 완성되는 음식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래서 메주쑤기는

겨울의 시간과 닮아 있다.



멈춘다는 건

많은 사람에게 불안한 일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 같고,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바쁘게 움직이고,

계속 무언가를 하고,

쉼마저도 생산적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대설은 말한다.

“멈춤은 낭비가 아니라 과정이다.”

콩이 메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간이 있다.

삶고, 으깨고, 묶고, 말리고,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

그 과정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는다.

특히 ‘기다림’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시간이 쌓이고, 깊이가 더해진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속에서

가장 중요한 배움이 일어난다.

대설은 ‘인내’라는 미덕과 닿아 있다.

인내는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의미 없이 버티는 것도 아니다.

그 시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믿고,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지금 당장은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이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걸 아는 것.

그게 인내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온다.

계획이 어긋나고,

일이 풀리지 않고,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시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날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탓한다.

“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지?”

“왜 이렇게 멈춰 있는 걸까?”

하지만 대설은 다른 시선을 건넨다.

“지금은 멈춰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멈춤에는 이유가 있다.

지나치게 달려온 몸을 쉬게 하기 위해서,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으기 위해서,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서.

멈추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느려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그래서 이 시간은

결코 공백이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채워지고 있는 시간이다.



조금 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조금 더 깊이 나를 들여다보고,

조금 더 단단해질 준비를 한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다.



“멈춘다는 건 내게 어떤 의미인가?”


화요일 연재
이전 07화소설 | 작지만 깊은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