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나누기는 쉽지 않다.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며, 똑같이 사랑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유독 셋째를 편애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핀잔을 듣지만
내 마음을 똑같이 나누기가 너무 어렵다.
셋째는 우연히 찾아왔다.
둘째가 5살이 되면서, 육아에 전념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이제 나를 찾고 싶어졌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때에 덜컥 셋째가 들어섰다.
반갑지 않았다.
임신 초기 검사에서 경미한 이상 소견이 나왔다.
24주까지 이어지는 입덧도 싫었다.
서른 일곱살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는 진단도 내려졌다.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어쩌지?'
임신 기간 내내 그 불안과 싸워야 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36주를 조금 넘기고 태어난 아기는 작았다.
2.7킬로에 47센티로 태어난 아기.
태어날 때부터 동그랗게 눈을 뜨고 엄마, 아빠를 보던 아기.
신생아인데도 자지 않았고, 잘 먹지 않았다.
그리고 여섯살이 되던 해.
아이는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내 불안을 그대로 안고 태어난걸까?
아이가 아픈 것이 내 잘못인거 같아 무너졌다.
짙은 안개 속을 헤매이듯 지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여전히 밝고 씩씩한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어쩌면 나는 미안함을 채우기 위해 더욱 아이에게 마음을 쏟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균형을 잃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딱 그만큼씩 자리를 나누어 갖는 순간.
춘분(春分)은 그렇게 균형으로 시작되는 절기다.
마음조차 균형을 잡지 못하는 나에게 춘분은 그렇게 말을 건넨다.
예전 사람들은 이 날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나이떡’을 해 먹으며 한 해의 안녕을 빌고,
콩을 볶아 먹으며 몸을 다스렸다.
또 ‘춘경(春耕)’이라 하여
봄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논밭을 갈고,
무너진 둑을 다시 쌓았다.
지금 당장 수확을 하려는 게 아니라,
수확을 가능하게 할 ‘균형’을 먼저 세우는 일.
땅을 고르고, 물길을 정비하고,
씨앗을 심기 전에 환경을 준비하는 것.
춘분은 그런 시간이다.
움직이기 전에, 중심을 잡는 시간.
삶도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이루기 전에
내가 설 자리를 먼저 바로 세워야 한다.
가끔은 너무 서둘러 살아간다.
목표를 세우자마자 바로 실행으로 달려가고,
결과를 만들기 위해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는 게 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내 삶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
균형이 무너진 채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지 않는다는 것.
춘분은 그걸 멈추게 한다.
일과 휴식,
성과와 관계,
이성과 감정,
나와 타인.
어디 한쪽으로 너무 쏠려 있다면
그건 오래 버티기 어렵다.
결국은 무너진다.
그래서 춘분은 ‘균형’을 묻는다.
단순히 공평하게 나누는 균형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가장 적절한 중심을 찾는 일.
논밭을 간다는 건
단순히 흙을 뒤집는 일이 아니다.
겨울 동안 굳어 있던 땅을 풀어내고,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걸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어도 자라지 못한다.
마음도 그렇다.
굳어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다짐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혹시 지금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면,
그건 게으른 게 아니라
그동안 너무 오래 버텨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춘분은 말한다.
“이제 조금 풀어도 괜찮다.”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저 천천히 뒤집어주면 된다.
내 안에 쌓인 생각들을,
오래 묵은 감정들을,
가볍게 흔들어보는 것부터.
쉽지 않았던 순간들,
버티느라 애썼던 날들,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
춘분은 그걸 인정하게 한다.
지금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중심을 잡는 첫 번째 단계다.
균형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늘 조금씩 흔들린다.
그래서 중심을 잡는다는 건
완벽한 상태를 만드는 게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오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마치 낮과 밤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이 하루처럼,
삶도 가끔은 이렇게
다시 맞춰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반대편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된다.
일에만 몰두했다면
관계를,
타인을 챙기느라 지쳤다면
나 자신을,
앞으로만 달려왔다면
잠시 멈춤을.
그렇게 조금씩 조정하다 보면
다시 나만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다시 질문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