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驚蟄), 문자 그대로 ‘벌레가 놀라 깨어난다’는 뜻이다.
낮은 땅 밑에서, 어딘가 조용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겨울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첫 몸짓.
이것은 비단 곤충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도 경칩은 일종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 같은 절기다.
한해가 시작 되면 우리는 늘 계획을 세운다.
계획은 늘 화려하고, 실천은 쉽지 않다.
그럴 때 위로를 주는 것이 바로 '다시'라는 기회이다.
'그래. 음력 설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뭐.'
한해가 시작하는 1월 1일의 첫번째 알람, 음력 설에 두번째 알람,
마지막 알람이 바로 경칩 무렵인 3월의 알람인 것이다.
아직 조금은 서늘한 공기 속에서
내 안 어딘가 잠들어 있던 생의 감각이 조심스레 눈을 뜬다.
겨울이 웅크림의 계절, 멈춤의 계절이라면...
입춘, 우수를 지나
경칩쯤 되면 그런 시간도 끝이 난다.
동장군의 기세가 누그러지고, 바람의 결이 달라진다.
언 땅도 부드러워진다.
내 마음에도 살랑 바람이 분다.
‘이제 그만 나와도 돼.’
계절이 조용히 등을 두드린다.
사람마다 깨어나는 방식이 있다.
어떤 이는 명확한 사건이 계기가 된다.
이직, 이사, 이별, 임신, 죽음, 새로운 프로젝트.
무언가로부터 밀려나거나
무언가에 불쑥 던져지는 순간, 잠에서 깬다.
또 다른 이는 아주 미세한 감각에 흔들린다.
방 안으로 스며든 햇빛의 결,
지하철 안에서 문득 떠오른 말 한 조각,
어릴 적 자주 걷던 골목길의 냄새.
그런 순간이 마음속 고요함을 깨뜨린다.
단단히 닫아뒀던 감정의 문을 툭 열어젖힌다.
당신의 경칩은 어떻게 깨어나는가?
소리 없이 깨어나는 봄의 시작.
너무 조용해서, 눈을 감으면 지나쳐버릴 수 있는 계절의 속삭임.
하지만 그 미세한 흔들림이 인생의 방향을 틀기도 한다.
이런 질문들은 경칩 즈음에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다.
겨울 동안 묻어두었던 의심과 갈망이
계절의 리듬을 타고 슬금슬금 떠오른다.
잠시 덮어두었던 삶의 질문들이 다시 깨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질문보다
그 질문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다.
막연한 불안으로 삼키는 대신,
이제는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경칩은 그걸 하기에 딱 좋은 시기다.
그림책 <그래봤자 개구리>를 읽어보았는가?
알 속에 있는 개구리는 자신의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드디어 올챙이가 되고 개구리가 되는 동안
온갖 시련을 겪는다.
"그래봤자"라는 존재가 맞닥뜨리게 되는 온갖 시련에 놓인다.
그 공격에 맞서는 외침.
"그래! 나 개구리다!"
뒤이어 여름을 가득 채우는 개구리 울음 소리.
우리도 움츠러질 때가 있다.
"그래봤자"라는 단어가 앞을 막는 상황을 만난다.
그럴 때 당당히 외쳐보면 어떨까?
"그래! 나 000이다!'
깨어난다는 건, 단순히 눈을 뜬다는 뜻이 아니다.
정신을 차리는 일이고, 방향을 다시 정비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니까.
경칩은 묻는다.
게으름? 상처? 자기비하? 관계의 권태?
혹은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온 오래된 습관?
또 하나,
겨울의 마무리와 봄의 시작이 겹쳐 있는 시기.
그래서 이 시기는 늘 어중간하다.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아직 두렵고,
그렇다고 예전대로 살아가기엔 마음이 어색하다.
그럴 땐 굳이 분명한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조금씩 꿈틀거리는지,
무엇에 마음이 자주 머무는지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본다.
경칩은 말한다.
이제, 나도 깨어나야 할 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