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마음의 기지개를 켜는 절기였다면,
우수는 꽁꽁 얼었던 가슴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눈이 비가 되도록 녹이는 시점이다.
‘우수(雨水)’는 글자 그대로 ‘비가 내리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뜻이다.
겨울 동안 얼어붙었던 대지가 조금씩 녹으며 눈이 비로 바뀌고,
땅은 수분을 흡수하며 생명력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짜 변화가 시작되는 절기다.
고였던 것들이 흐르기 시작하면, 겨울이 꺾이고 봄이 조금씩 살아난다.
마음도 그렇다.
딱딱하게 굳었던 생각들이 물을 머금고 유연해지기 시작하면,
속에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도 서서히 움직인다.
그래서 우수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봄을 맞이하는 계절이자
움직이지 않던 것들이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다.
눈이 그치고 나서도 계절은 겨울에 붙잡혀 있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리부터 달라지고, 냄새가 달라지고, 공기 중의 촉감이 달라진다.
우수 즈음엔 그런 변화가 온다.
분명히 아직 춥지만 뺨을 스치는 공기가 조금 다르다.
축축하면서도 부드럽고, 어딘가 묘하게 포근한 찬 기운 속에는 생기가 섞인 느낌이다.
바람이 마치 잎사귀 하나쯤 달고 불어오는 것처럼 느껴지고 흙냄새가 살아난다.
겨울 동안 마른 먼지처럼 흩날리던 공기 속에서,
비에 젖은 땅냄새가 은근하게 올라온다.
그건 생명의 냄새다.
죽은 듯 고요하던 대지에서 생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증거다.
이때가 되면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던 감정들이 어느 순간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그게 울컥하는 눈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설명할 수 없는 두근거림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 변화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감정이 흐르기 시작할 때, 삶도 흐른다.
기분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 마음 안에서 조용한 개울이 생긴다.
작고 투명한 생각들이 그 물길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고,
묵혀 있던 마음들이 서서히 정화된다.
우수는 그런 감정의 흐름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이다.
어떤 사람은 그걸 음악으로 느낀다.
평소에 잘 안 듣던 노래가 괜히 가슴을 울린다.
어떤 사람은 그림자처럼 감도는 향기로 알아챈다.
지나가는 사람의 옷깃에서 나는 냄새가 어느 봄날을 소환해 버린다.
우수는 그 흐름의 시작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 속도로 녹아가고 있나.
우수는 ‘완전히 봄’이 아니다.
녹으려는 것과 남으려는 것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시기다.
아침엔 얼어붙고, 낮엔 물이 되고, 저녁이면 다시 얼어붙는다.
봄농사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우수 비.
“우수에 비가 많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라고 농부들은 믿는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비이기에 24절기에는 비, 눈과 관련된 절기가 유독 많다.
식물이 자라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비만큼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음 알아차림이 아닐까.
나와 너의 감정을 온전히 수용하고 이해할수록 관계는 더 건강하고 돈독해진다.
비도 시기에 따라 필요한 비가 있고 불필요한 비가 있듯,
감정도 상황에 따라 필요한 표현과 불필요한 표현이 있다.
관계에서 상대와 나를 충분히 이해한 감정은 건강하다.
남편을 닮아 마음씨가 고운 셋째는 아기 때부터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했다.
아이가 39개월 때의 일이었다.
허리디스크 만성통증으로 고생 중인 나는 어깨나 다리가 자주 아팠다.
“어깨가 아프네.”라는 말에
네 살 아들은 살갑게 다가와 “그럼 내가 두들겨줄까?”하며
어깨도 두드려주고, 다리도 주물러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마를 해주며 살뜰하게 엄마를 챙기는 고마운 아이.
어느 날 아침, 두통에 시달리던 내가 “으~ 머리 아파.”라고 말하자,
아들은 늘상 그랬던 것처럼 “내가 두들겨줄까?”라고 묻고는 머리를 힘껏 두들겨주었다.
‘머리에 안마라니...’
아이의 꼬막손에 머리카락은 엉키고, 머리를 주먹질당한다는 생각에
너무 웃겨서 폭소를 터트린 엄마가 행복해 보였나 보다.
활짝 웃으며 “엄마, 시원해?”라고 물었다.
“응, 너무 시원해.”하며 고개를 무한 끄덕였다.
아이의 행동은 틀렸을지 모르나 배려와 공감받은 마음은 정답이었다.
아이 덕분에 웃게 되자 묵직한 두통도 빗물에 씻기듯 한결 가벼워졌다.
이렇듯 상대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감정은 늘 서로에게 건강하고 이롭다.
일 년 동안 먹을 장 담그기는 우수에 하는 일이다.
이렇게 담근 장은 약 40일이 지난 청명과 곡우 사이쯤 되면
장물과 된장을 분류하여 된장과 간장을 만든다.
이때 만들어진 된장이 가장 좋은 맛을 낸다 하니
집집마다 불 피운 짚으로 항아리를 소독하고
잘 띄운 메주와 소금물, 말린 고추와 대추, 숯을 넣어 장을 담근다.
"어미가 아이를 품 듯 모두 정성을 다해 담그면 그 장맛은 가족을 품고 그 장맛은 인생을 품지. 장은 곧 최고의 보약“
창작뮤지컬 <장 담그는 날> 공연의 대사이다.
이 작품은 100년 동안 장맛을 지켜온 최씨 종가의 이야기를 토대로
가족 간의 소통과 전통을 지키려는 신념의 가치를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작품 곳곳에는 내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양념처럼 감칠맛을 내며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우리에게 장 담그기는 어떤 의미인지 왜 그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한지 가르침을 준다.
기억하고 지키는 이가 없다면 전통은 잊힌다.
그렇다면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수가 되면 한 해 농사에 쓰일 좋은 종자를 고르는데, 이를 씨앗 고르기라고 한다.
생명력이 강하고, 수확량이 우수한 품종을 가려내고 필요한 경우에는 종자를 교체하는 그루갈이도 준비한다.
이 종자를 고르는 일은 올해 농사의 성패를 결정하기에
농부에게는 튼실한 씨앗을 골라낼 줄 아는 지혜와 소신이 필요하다.
우리 삶에도 종종 마음 씨앗 고르기가 필요하다.
겨울은 감정을 안으로 말아놓는다.
견디는 데 집중하고,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움직이기보단 멈추는 쪽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그러나 멈춤은 나쁜 게 아니다.
그건 쉬어야 했던 이유이자, 준비해야 했던 시간이다.
하지만 오래 고이면 마음은 탁해진다.
움직임 없는 관계, 말라버린 의욕, 그 아래 썩어가는 마음.
그때 마음 씨앗 고르기가 요구된다.
고였던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 정리되지 않는 어수선한 잡념,
의지를 꺾게 만들었던 마음들을 가려내고 그저 슬쩍 움직이면 된다.
무거웠던 문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작은 출렁임 하나를 허락해 보면 된다.
누군가에게 그건 산책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글쓰기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그걸 울음으로 흐르게 할 수도 있다.
물처럼 감정을 흘려보내야, 내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숨 쉴 수 있다.
우수가 와도 우리 몸은 어색하기 마련이다.
움직이고 싶은데 아직 익숙하지 않고, 감정도 뭔가 말하려는데 어휘가 뚝뚝 끊긴다.
외부의 이유든, 내면의 침묵이든, 우리는 한 자리에 고인 물처럼 머무르기도 한다.
결심과 망설임, 의욕과 무기력 사이를 오간다.
뭔가 해보려다가도 금세 지치고, 희망을 품다가도 순간 무너진다.
하지만 그건 실패가 아니다. 단지, 녹아가는 중이다.
녹는다는 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밖에서 열이 닿고, 안에서 물기가 차오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단단한 상태에서 유연한 상태로 바뀌는 일.
그러니 지금의 나는 어떤 속도로 녹고 있는지를 가만히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비교할 필요도 없다. 누구보다 늦게 녹아도 괜찮다.
내 속도대로 녹고 있다면, 그건 이미 변화다. 그때 우수는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