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 시작은 작아도 괜찮아

자연이 던지는 삶의 질문

by 최영미


“문턱 밟지 마라. 복 나간다.”

어른들의 꾸지람에도 아랑곳없이.

늘 문지방을 밟고 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방 안에 있는 가족들에게 말을 건넬 때도, 티브이를 볼까 동구 밖 마실을 나갈까 선택의 순간에도

언제나 그곳이 출발점이었다.

문지방의 윗부분인 문턱을 발끝으로 밟고 서면,

자연스레 흔들리는 몸은 중심을 잡으려 배에 힘을 주며 허리를 곧추 세웠다.

몸을 곧게 하다 보면 마음도 금세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늘 잔소리를 불렀지만 그 소소하고 달달한 맛을 놓칠 수 없었기에

내 시작은 항상 방의 작은 정상인 문턱이었다.


겨울의 끝이자 봄의 문턱인 입춘.

아직 황소바람이 뼛속까지 에는 2월이지만, 달력 속 절기는 봄을 알린다.

밖은 여전히 춥다. 얼음도 그대 로고, 마른 가지엔 생기가 없다.

겨울은 사람을 깊이 안으로 데려가고 그 계절이 길고 추울수록, 내 마음도 깊고 무거워진다.

그 겨울을 통과한 몸과 마음은 어딘가 푸석하고 둔해져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고, 움직이는 건 더 가쁘다.

겨울이 너무 길어지면 마음의 시계도 멈춘 듯 삶은 종종 멈추고 뒤엉킨다.

감정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메마르고 건조하더니 이내 생각도 엉키고 만다.


그래서 입춘은 새봄의 신호이면서도 아직 겨울의 언저리, 그 사이 어정쩡한 기분이 든다.

이제 뭔가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기운은 아직 없는 상태.

의욕은 앞서고, 몸은 따라오지 못하고, 결심은 멀쩡한데 마음은 어딘가 늦잠을 자고 있는 느낌이랄까.

차디찬 계절이 묵묵히 버틴 자리, 그 입구에 봄이란 단어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그렇기에 입춘은 그저 계절이 바뀌는 시점이 아니라 마음의 봄을 준비하는 시간,

다시 피어나기 위해 몸을 푸는 시간이다.

겨울에서 바로 봄으로 뛰어넘을 수는 없고, 회복되지 않은 채 무리한 시작이 될 수 없으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회복과 시작 사이의 다리 놓기. 입춘은 둘 사이를 이어 주는 통로이자 마음의 동면이 끝날 무렵인 것이다.


그럴 땐 방향보다 리듬을 먼저 회복하려 한다.

일상의 작은 리듬, 몸의 자연스러운 흐름, 마음의 흐름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봄이 성큼 닿아 있다.

아침에는 커튼을 열어 해를 보고, 점심엔 햇살에 기대고, 저녁에는 조용히 나를 정돈한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조금씩 돌아오는 기운을 따라가 본다.


감각을 깨우는 연습도 해본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닫혀 있던 오감, 마음도, 몸도, 세상도 흐릿하고 희미하게 느껴지던 감각,

그것을 다시 천천히 켜보는 시간이다.

햇살이 길어진다는 걸 알아차리고, 손끝에 닿는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는 순간,

봄은 남보다 먼저 내 안에 도착한다.

거창할 것 없다.

마셔보지 않던 차를 한 잔 따라보고, 햇살 드는 자리에 앉아 책 한 페이지를 펼치고,

겨우내 접어두었던 운동화를 꺼내보는 일, 이 모든 게 감각을 깨우는 연습이다.

입춘은 결심보다 감각을, 계획보다 알아차림을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봄이 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내 안에 봄을 맞이할 공간이 있는가 하는 것.

계절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간간이 따뜻한 날이 있고, 봄에도 차가운 꽃샘추위가 찾아오는 것처럼

삶도 단숨에 변화하거나 회복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변화에는 반드시 시작점이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로부터 걸음을 뗀다.

무엇을 끝내야 비로소 내 안에 봄이 들어올 수 있을까.

무엇을 덜어내야 작은 씨앗 하나를 심을 자리가 생길까.

올해는 어떤 시작을 준비할까.


나는 늘 복을 비는 것으로 시작한다.

입춘이면 문 앞에 이런 글귀가 붙는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봄에 들어서니 큰 복이 들어오고,

밝고 따스한 날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이다.

예부터 우리는 이 짧은 문장 안에 한 해의 희망을 꾹꾹 눌러 담는다.

글씨를 모르는 어린아이가 쓰면 더 큰 복이 온다 하니

습자지를 대고 삐툴빼툴 써 내려간 아이의 글씨를 걸어두며,

입춘이라는 말 한마디에 따뜻한 기운을 기대한다.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을 복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타인과는 상관없이 오롯이 내 복만을 추구하면 될까?

입춘에 행했던 풍속 중 아홉차리와 적선공덕행이 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아홉 번 반복하면 일 년 동안 잘되고 다복하다 하여 마당을 아홉 번 쓸고,

천자문을 아홉 번 읽는 등 근면과 성실을 일깨우는 풍속이 아홉차리이다.


또 적선공덕행은 남몰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하며 공덕을 쌓는다.

마을 어귀 개울에 끊어진 돌다리를 수리하고,

어려운 이웃의 집 앞에 밥을 한 솥 해놓는 것은 똑같이 어렵던 보릿고개 시절에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이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발견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돌이켜 생각해보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남을 도움으로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꾸준히 그리고 성실히 일하는 힘을 기른다.

잡다한 감정, 끊어진 관계, 지나간 후회,

되감기만 반복되던 생각들로 뒤엉킨 겨울의 찌꺼기를 털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어떤 감정은 차가운 계절을 빌려야 정리할 수 있다.

고요한 시기일수록 마음의 잔해가 더 또렷하게 보이니까.

그러니 입춘은 시작의 계절이지만, 그 시작은 먼저 비워냄으로써 완성된다.


시작은 작아도 괜찮다.

작은 일이라도 뜻을 정하고,

그 일을 이룰 때까지 모든 노력을 집중하겠다고 굳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중간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발휘하며 시작한 일에 끝을 맺는 것만으로도

한 해의 시작으로 충분히 밝다.

그런 의미로 입춘축을 깔끔한 손글씨로 써서 평소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하고,

우리집에도 걸어보면 어떨까?

“입춘대길” 글자만으로도 봄이 성큼 다가오지 않을는지.


"당신은 누구에게 입춘대길 글씨를 선물하고 싶은가요?"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1화사계절은 묻고, 나는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