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

by 최영미

문득,

"공기 결이 다르네."



아침 공기가 한층 더 차가워지고,

햇살은 여전히 밝은데도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스민다.

그때 알게 된다.

아, 이제 겨울이 오는구나.



입동(立冬), 겨울이 시작되는 문턱.

계절이 바뀌는 건 늘 조용하지만,

이 시기만큼은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따뜻한 것들이 자꾸만 생각난다.



입동은 준비의 계절이다.

겨울을 버티기 위한 준비가 한창인 시간.

예전 사람들은 입동이 되면 분주해졌다.

김장을 하고, 겨울 먹거리를 마련하고,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며 긴 시간을 대비했다.



김장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서로의 손을 빌리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있었다.

‘치계미’라고 불리는 풍속.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선물을 나누며

작은 잔치를 벌이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

그건 겨울을 혼자 견디지 않겠다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겨울은 혼자 보내기엔 조금 긴 계절이다.

해는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고,

사람의 마음도 그만큼 깊어지기 쉽다.

괜히 지난 일들이 떠오르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고개를 든다.

괜찮은 줄 알았던 일들이

문득 다시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겨울은

단순히 추운 계절이 아니라,

감정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입동은 그 입구에 서서 묻는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이 겨울을 건널거니?”

우리는 종종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고 한다.

슬픔은 빨리 털어내야 할 것 같고,

외로움은 인정하면 더 커질 것 같고,

후회나 미련은 없는 척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믿는다.

그래서 겨울을 맞이할 때도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는 척

그저 버티려고만 한다.



하지만 입동은

조금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버티는 대신,

하나쯤은 꼭 끌어안고 가보라고.

김장을 할 때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배추를 절이고, 씻고, 양념을 버무리는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손도 시리고, 허리도 아프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런데도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다.

지금의 수고로

앞으로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일.



감정도 비슷하다.

지금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마주하고,

내 안에서 자리를 잡게 해야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다.



그래서 입동은 묻는다.

“나는 어떤 감정을 꼭 끌어안고 겨울을 지나야 할까?”

그건 슬픔일 수도 있고,

그리움일 수도 있고,

아직 끝나지 않은 분노일 수도 있다.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막연한 허전함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인정하고,

내 옆에 두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치계미 풍속을 떠올려본다.

음식을 나누고, 선물을 건네고,

작은 잔치를 벌이며 서로를 챙기던 시간.

그건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너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함께 겨울을 난다.”

그 메시지를

음식과 온기로 전하던 방식.

지금의 삶에서도

그런 연결은 여전히 필요하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

혹은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

그 연결이

겨울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따뜻한 차 한 잔,

조용한 음악,

오래 미뤄두었던 대화,

혹은 아무 말 없이 함께 있는 시간.

그 모든 것이

겨울을 견디게 하는 작은 불씨가 된다.



함께 모여 김장을 하고,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사람들의 온기.

그 온기를 떠올리며

이 겨울을 준비해본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감정을 안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다시 따뜻한 계절이 올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면 충분하다.

겨울은 길지만,

지나간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마음은

이전보다 조금 더 깊어져 있을 것이다.



― 나는 어떤 감정을 꼭 끌어안고 겨울을 지나야 할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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