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다. 이름도 예쁜 진주다. 이곳에는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해 온 내 이모와 딸인 동생이 사는 곳이다. 이곳을 몇 번 오갔더니 이제는 친근해진 곳이 되었다. 진주에서 한 시간여 차를 타고 남강이 흐르는 함양에 왔다. 남강의 지류인 아주 조그만 물길 곁 오리 숲은 오래된 그 흔적 그대로 나무줄기가 두 아름이 훨씬 넘는 것이 많다. 그 듬직한 키 큰 모습과 휘어진 우아한 모습을 뽐내고 있는 그곳 안으로 끌려 들어가 바닥에 깔린 강변의 자갈을 밟아본다. 요즈음 건강에 좋다고 여기저기 황톳길이 많지만, 이 사각거리는 흰 자갈밭을 걷는 맛에 비할거나! 심혈을 기울여 잘 꾸며놓은 도시의 자연이나 인공 숲은 시골의 이 자연스러운 풍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래된 나무들의 자연스러운 구부러진 선이 그렇고, 그 곁에서 반짝이며 흐르는 물줄기의 구부러짐도 그렇다. 강변에 깔린 여러 모양의 자갈들도 친근하고 정겹다.
안의면은 그 옛날 우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갈비 맛이 유명하다는 말을 흘려듣고는 지나가는 촌로에게 물어 찾아 찾아 아주 말끔한 정원이 있는 깨끗한 집 제쳐 두고 원조라는 후줄근한 집에 자리 잡는다. 점심때인데도 아무도 없는 한적한 집이다. 들어서는데 흐르는 국악소리가 들린다.. 과히 큰소리도 아니어서 그저 무심히 흘려들으며 듣고 앉았다. 나온 갈비 맛은 집에서 하는 우리 집 맛이 훨씬 맛이 있다. 소문은 옛이야기인 모양이다. 주인장 말 이제는 우시장도 없어지고 수입산 갈비를 사용한단다. 나도 요즈음은 무슨 때가 되면 갈비를 해야 할 때 가끔 수입산 갈비를 쓴다. 한우갈비 비싸도 너무 비싸다. 여하간 내가 한 갈비 맛이 낫다고 속으로 웅얼댄다. 그러나 나온 밑반찬 맛은 끝내준다. 끝내준다는 그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우선 김치맛. 요즈음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약간 질긴 듯한 느낌의 푸른 잎을 꽤 발견할 수 있는 김치, 딱 맞게 익어서 혀에 싹 감기는 그 맛, 그리고 된장에 넣어 삭힌 누리끼리한 고추 맛 이게 짜지도 않고 적당히 매우니 이것 또한 대단, 잔멸치에 부추를 넣어 고춧가루 넣어 무친 것, 이 또한 감칠맛이 있다. 정면에 펼쳐진 넓은 창밖에 눈을 돌리면 하늘하늘 흔들리는 오래된 벚나무 이파리들이 가을 색을 입기 시작해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잔뜩 늘어진 굵은 벚나무 가지에 꽃을 담은 봄을 상상해 보는 맛도 쾌 근사하다!
갈비 맛은 평범 그 자체지만 밑반찬과 보이는 경치로 만족이다. 역시 음식점은 김치맛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결론은 이 집은 대만족은 아니라도 만족이다.
주인의 행동도 분위기도 범상치 않았다. 알 수 없는 커다란 날벌레가 휘젓고 다녀 우리 모두 어쩔 줄 몰라하는 데 주인장 오더니 허공을 휘둘러 한쪽에 몰아 떨어뜨린 후 손으로 집어 밖으로 날려 보낸다. 살생은 아니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뭔 호들갑이냐'라는 듯한 표정이다. 계속 흐르는 우리의 국악. 주인과 우리 식구만 앉아 있다.. 이상한 분위기로 인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 집. 밑반찬 특히 김치의 맛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밖으로 나와 오리 숲을 다시 걸어보고 휘돌아 고성해변으로 간다. 만조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뻘위에 무심히 서 있는 하늘색 배 세 척을 보며, 멀리 바다의 푸른 물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카페를 찾아 앉는다. 기막힌 풍광을 즐기며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최고의 하루였다.
이번 남쪽으로의 여행에서 요즈음 내가 사는 곳에서는 흔치 않은 붉은 맨드라미가 많이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시 한 편 감상해 보세요
나비 / 윤곤강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