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모셔만 두는 크리스털잔들이 있다.
위스키잔, 코냑잔, 와인잔. 위스키잔은 입이 닿는 곳에는 금박으로 1센티 정도로 둘러있고 잔 외부는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는 연갈색, 코발트블루색, 연녹색, 붉은색, 연자주색, 노란색으로 채색되어 있는 잔이다. 바닥도 방사형으로 줄무늬로 조각되어 있다. 코냑잔은 조각된 맑고 투명한 크리스털잔이다. 와인잔은 굽이 20센티정 도인 높이로 이것 역시 조각된 자주색, 붉은색, 녹색, 노란색, 청남색잔들이다. 자연이나 인공의 빛이 그곳을 비출 때 그 화려한 빛의 산란은 눈을 떼기가 싫어질 지경이다. 더구나 그들을 씻을 때 부딪치는 소리는 크리스털 특유의 쨍한 귀를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난다.
이들을 가지게 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우리 집의 격과는 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는 물건이다. 그저 너무나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하게 된 그야말로 소장품이다. 오래전 남편이 유럽에 몇 년을 체류했던 덕에 그곳에서 사 가져온 것이다. 나이가 많지 않을 때는 많이 사용했으나 이제는 바라만 보게 되었다. 같이 사는 사람이 술을 끊은 것이다. 이제는 그림의 떡이다. 그것이 특유한 술의 잔이 아니면 물 잔으로 쓰기도 모양이 화려하다. 그래서 가끔 아이들이 오랜만에 집에 올 때 쓰려해도 술 없는 상에 그 잔을 올려놓기도 애매하다. 다른 그릇들 평범해도 아주 평범한 갖추어져있지 않은 상에 화려한 잔을 놓자니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모셔두고 바라만 보는 소장품이 되고 말았다. 가끔 백화점에 가보아도 우리 것과 비슷은 해도 우리 집 것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나의 착각이렸다.) 딸과 어쩌다 부엌용품매장 둘러볼 때 딸에게 "우리 집 잔이 최고지 않니"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무엇하랴 가끔 먼지 앉은 크리스털잔을 보다 보면 사람이나 물건이나 그것이 존재하기 적당한 장소에 있어야 더 빛나고 더 유용하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곤 한다.
어느 날 한가로이 잔을 바라보다 잔들을 꺼낸다. 좁은 부엌에서 쨍쨍 크리스털 부딪히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하나하나 세제로 꼼꼼히 닦고 뽀드득소리를 들으며 마른 수건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면 그 속에서 옛 기억들이 뿜어져 나온다. 남편이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그 크리스털잔에 맑고 투명한 얼음을 집게로 집어넣고 연갈색의 양주를 따르며 흐뭇해하는 그 모습을 진저리 치며 바라보던 젊은 시절의 내가 보인다. 그들은 술이 좋아서 일뿐 그잔의 아름다움은 지나쳤겠지 아니 그 묵직한 질감의 잔과 그 속의 술을 같이 즐겼을 수도 있겠다. 그들 나름대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 모습을 나는 끔찍이도 싫어했다. 마시면서 점점 흐트러지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도 괴로웠다. 경직돼도 많이 경직된 젊은 시절이었고 그렇게 진저리 치며 본들 바꿔질 수 없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각자의 삶이 많이 어긋나고 있을 때였다. 세월이 흐르고 그때 그 시간을 다시 바라보니 괴로웠던 그 시간도 크리스털잔 같이 아름답게 채색되고 만다. 아무 소용없게 된 크리스털잔들을 창문을 향해 비쳐보며 오늘도 그 무지개색을 황홀하게 바라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