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by 독나리

요즈음은 대부분의 생필품들을 홈쇼핑으로 구입하게 된다. 먹거리와 옷부터 간단한 가구 등등 다양하다. 얼마 전부터 기모 들어간 따뜻한 바지를 사고 싶어 홈쇼핑을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 구입했다. 홈쇼핑은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몇 번 경험한 결과다. 그러나 백화점이나 집부근 옷가게보다는 많이 저렴하고 품질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같은 종류를 두 개나 세 개를 같이 파니 어쩔 수 없이 두세 개 를 사게 된다. 집에 같이 입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야 좋지만 나 같은 사람은 두세 개 사놓고 다 입지도 못하고 계절이 지날 경우도 있다. 그래도 홈쇼핑의 여러 가지 장점으로 옷은 그곳에서 많이 산다. 구입하고는 도착할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런 장점도 있다. 내가 티이브이로 볼 때와 같은 느낌일까? 기대하며 기다린다.


이번에 주문한 바지는 단을 많이 줄여야 한다. 감은 촉감이 부드럽고 무늬도 만족이다. 이제 단을 줄이는 것이 문제다. 세탁소에 맡기면 바지 세개 삼만 원이 든다. 싸게 산 의미가 없다. 재봉틀이 있다면야 문제가 없겠으나 이제부터 바늘, 가위, 실과 내시력과의 씨름이 시작된다. 오랜만에 반짇고리를 연다. 그 안에는 가죽골무, 각색의 실, 실패, 바늘, 가위, 자 등이 있다. 실패. 이 실패는 외할머니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쓰시던 거다. 옻칠에 자개무늬가 있는 장방형 것 하나, 또 하나는 가운데 허리가 잘록한 모양이다. 아마도 오륙십 년은 넘었을 거 같다. 군데군데 검은 옻칠은 벗겨져 나무가 보이고는 있으나 자개는 용케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웬만해선 버릴 수가 없는 물건이다. 나는 비교적 물건을 쉽게 버리곤 하는 편이어서 버린 것을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일도 가끔 있곤 한다. 그러나 이 실패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또 하나 나의 시어머니는 여유시간에는 알록달록한 조그만 헝겊조각을 아주 조그맣게 접어 베개머리를 만들곤 하셨다. 요새는 예쁘고 편한 베개가 많은데 아니 저런 걸 무엇 때문에 만드시나 생각 했었다. 이제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으나 그 베개머리는 지금도 서랍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이렇게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런 것은 버리기가 쉽지 않다.


바짓단 고치려 반짇고리를 열고는 외할머니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고 집에서도 한복을 입고 일하시던 할머니. 솜이불을 하얗고 풀맥인 빳빳한 옥양목으로 된 호청으로 꿰매시던 손길.


지금은 실들을 사용하기 쉽게 말아서 팔지만 나 어릴 때만 해도 실이 타래로 뭉쳐져 있었다. 그걸 쓰기 좋게 하려면 한 사람은 양쪽 팔을 실타래에 꿰어 넣어 벌리고 있으면 한 사람은 감아야 했다. 할머니에게 팔 아프다고 징징댔던 모습도 떠오른다. 모든 것이 천천히 돌아가던 세월이었다. 그런 세월이었으니 식구 7명의 살림을 도맡아서 하시던 할머니가 편안히 쉬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항상 움직이셨다. 더구나 셋은 학생이니 도시락 싸는 일만도 큰일이셨다. 당시에 집이 2층집이었는데 청소하시느라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내리시던 할머니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서 할머니가 만드신 따끈따끈한 야채찐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의 즐거움은 내 나름대로의 힘든 생활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가끔 할머니는 가구의 위치도 이리저리 바꾸어 놓으셔서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셨다. ''아니 이무거운 가구를 어떻게 옮기셨어요?'' 하고 여쭈어보면 네 귀퉁이마다 들어서 담요를 거기에 넣고 옮기고자 하는 방향으로 잡아끌면 된다고 하신다. 할머니에겐 불가능은 없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 요리프로도 열심히 보시곤 하셨다. 그 마음을 주부가 되고 나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매일 식탁에 무슨 반찬을 올려 노을까 고심하셨던 것이다.


바짓단 줄이며 외할머니까지 생각이 흘러갔다. 세월은 많이 흐르고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나의 곁에 실패와 함께 계신다. 바짓단에 바늘을 넣었다 뺏다 하면서 오래전 사라진 긴 세월 중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잠시나마 그 따뜻함으로 행복에 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