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건다. 안 받을 수도 있다. 못 받을 수도 있다. 나에게 오늘은 대화가 필요하다. 전화를 안 받는다. 바쁜가 보다. 7,8번 벨이 울려도 안 받는 건 바쁜 거겠지.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오늘은 안 되는 건가 보다. 다른 때 걸어보자. 시간은 넘치니까.
조금 후 내 폰에 벨이 울린다. 받으려 하니 끊어졌단다. 잘 지냈느냐로 시작 그럭저럭 시간 죽이고 있는 상황. 날이 추워졌다는 말을 시작으로 쓸데없는 이런저런 모임 참가이야기, 과연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부터 그렇다고 외면하고 고립되어서 좋을게 뮈람 까지.
어제 도서관에 가서 제목이 좋아서 책을 빌려왔다는 내 이야기를 했다. 그 제목이 딱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시인이 쓰신 '치명적 사랑을 못한 열등감' 기가 막힌 제목이 아닌가. 이런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나 이 글을 쓴 분은 이걸 어떻게 풀어놓고 있을까? 지금 읽는 중이다. 어느 한 가지 일이나 한 사람에 푹 빠지지를 못 하는 감정이 굳어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기쁨이랄까!
'너는 아닐 거 같은데' 저쪽의 폰에서 그녀가 말한다. '무슨 말씀을 나는 평생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건 어떤 일에 건 푹 빠져 본 적이 없어' ' '나도 그래' 전화기 저쪽에서 나와 동조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전부터 그녀와 대화하면서 그녀의 성향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이야기를 한 것이다. 치명적인 사랑이라니
사랑이야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이 책을 쓴 문정희작가가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파스테르나크의 집을 방문해서 소설주인공 지바고와 라라의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를 생각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라라의 테마'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화면을 보며 듣는다. 하얀 눈이 폭포같이 쏟아지고 얼음으로 가득 찬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모습의 화면을 배경으로 지바고와 라라의 애틋한 표정을 보며 치명적인 사랑을 느껴본다.
치명적 사랑은 슬프다. 아닐 수도 있다. 복 받은 사람들이다. 많은 이야기가 헤어짐 아니면 죽음으로 끝난다. 닥터지바고는 그것으로 아주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이야기가 내재되어 있으나 그것을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누군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