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

by 독나리

요즈음은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냥 눈이 떠진다. 교회새벽예배에 가야 해서 일찍 일어난다는 어떤 친구도 있는데 그런 의무도 없는데 그냥 일찍 눈이 떠진다. 이런 귀한 시간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그렇지 책을 읽어야겠다. 빌려온 책은 많은데 낮에는 산만하고 저녁에는 텔레비전 보느라 빌려온 책 읽기는 항상 뒤로 밀린다.

책 한 권을 들고 엎드렸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책을 넘긴다. 갑자기 거실전등이 나가버린다. 거의 한 달 전부터 전등이 흐릿흐릿해졌다 밝았다를 반복했었다. 사람 불러 교체해야겠다 생각만 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래도 그렁저렁견딜만했었는데 갑자기 나가버리는 거다. 아침 이길 망정이지 저녁이었으면 난감할 뻔했다. 이렇게 일을 미루기 잘하는 성질은 고쳐지지를 않는다. 오늘도 산을 오를 수 있는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는데 게으름으로 같이 합류도 하지 않고 누워서 뒹군다.


전등 교체를 하려 사람이 왔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두려움을 불러온다. ''전등이 오래돼서 전체를 바꾸는 게 좋겠는데요'' 형광등으로 그냥 교체할 것인지 새로운 것으로 할지 판단을 재촉한다. 젊은이의 이런 도전적인 언성에 주눅이 드는 것은 전부터 느끼기 시작했었다. 우물우물하다가 ''좋은 것으로 하죠'' 하고 만다. 자세히 묻지도 않은 채.

결과는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LED라는 전등이 이리도 환한 줄은 몰랐다. 전의 형광등에 비해 눈이 부셔 한동안은 자그만 다른 전등하나 켜놓고 LED전등은 꺼놓았었다. 딸 하는 말. ''한동안 계속 켜면 익숙해져'' 그래서 요즈음 계속 이용하려 노력 중이다. 그래도 크게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내 밖의 세상은 빨리도 변하고 있다. 그걸 따라잡으려 뒤쫓다가 나는 사그라질 것 같다.


얼마 전에 한 노인의 삶을 표현해 내려간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리빙'이라는 영화. 사회관계가 별로 원활하지 못하고 경직된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 노인 어떤 여유로움도 가지지 못한 채 묵묵히 맡겨진 일만 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병이 찾아온다 얼마 있으면 죽게 된단다. 그로 인해 그는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와중에 아들부부가 자신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그 노인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없어도 되는 존재임을 느끼며 말없이 잠적해 버린다 그는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자기가 누려보지 못한 자유를 누려본다 낯선 바에서 술을 마시며 슬픈 노래를 읊조려 보기도 한다. 그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회사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일처리를 하고, 아들에게는 본인의 생명이 어찌 되는지 말을 안 하고 죽고 만다. 가족과의 소통부재. 다른 사람과의 소통방법을 조금은 깨닫고 삶을 마감한다. 비참한 삶이다.

이런 생의 마침을 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은 살지 못하고 세상모두와 진실된 소통을 거의 하지 못한 채 사라진 것이다. 이주인공 노인의 삶만이 아니다. 나이 든 사람. 어른으로서의 사람의 삶. 나의 삶이 어떤가 뒤돌아 본다 쉽게 고쳐지겠는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