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모든 이런 상황에서 달아나 그냥 돌아서고 싶었다. 계단은 가파르기만 하다. 9평짜리 아파트 3층 지금 그녀에게는 힘들다. 철퍼덕 앉는데 차갑다. 돌계단이다. 전부터 돌계단이었다. 초봄의 싸늘함이 온몸을 감싼다.
오늘 아침 출근 전 그에게 집 열쇠를 쥐어주었다. 그녀에게 집 열쇠는 없다. 집에 들어갈 방법은 그에게만 있다 말했다. 오늘 집 밖에서 끝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그녀가 퇴근해서 집 앞에 온 시간은 7시쯤이다. 지금은 10시다. 거의 3시간이 지났다. 그녀가 갈 다른 곳은 어디에도 없었고, 가고 싶은 집도 물론 없었다. 있어도 그녀는 가지 않는다. 이런 일로 아는 집을 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에도 한 번 남편과 다투고는 친구집에 가서 자고 왔었다. 친구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멋쩍게 헤어진 기억이 있다.
돌계단에 앉아 있자니 온몸이 저려온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허공에 떠돌고, 몸은 꽁꽁 얼어가고 있다. 엎드려 쪼그려 앉아 등을 어둠에 내어준 채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자신이 이제는 안쓰럽지도 않다. 그냥 밉다.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 더욱 어리석은 자신이 미워진다.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의 눈길이 많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시간은 흘러 이제 12시가 넘어간다. 자신이 왜 이렇게 매달려야 하나? 이건 물론 사랑이 아니다. 그냥 오기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냐이다. 어떻게든 사회규범을 깨지 않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나의 몸부림이다. 선을 벗어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이다. 그녀는 그곳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남편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출근해야 한다. 새벽의 어스름이 마치 앞이 안 보이는 그녀의 앞에 놓인 길 같기만 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서 길을 나섰다. 미동도 없는 조용한 새벽길은 지금 그녀에게는 다른 세계인 것만 같다. 희미하게 보이는 초승달이 그녀의 시야에 와서 꽂혔다.
처음부터 이런 결혼길로 들어서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주위에서 끝없이 찔러대고 집안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지고 있어 빨리 나는 이 집을 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을 가볍게 해 드려야만 했다. 이렇게 상황이 그녀를 옥죄고 있었고 깊은 생각 없이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것이 이런 결과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니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본인 인생의 길을 선택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다른 원인을 끌어들이는 것 그건 아니다. 여하간 그녀는 인생의 큰 포인트를 쉽게 결정해 버렸다.
학교에 사정이 있어 오후에 출근한다고 전화해 놓고는 공원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초췌한 모습을 한 그가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녀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마치 무슨 일이냐는 듯이 그는 생각했겠지 '누구 집이든 갔겠지' 아니 그런 생각조차 안 했을지도 모른다. 자기에 몰입해 있을 테니-- 그것은 그의 생각의 한계다. 그녀를 모르는 그의 생각이다. 그녀는 몰랐다는 척 구는 그가 싫다. 다른 사람 보기에는 그는 그냥 착하고 말없는 사람이다. 무조건 미안하단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면 그것으로 끝난 줄 아는 사람이다. 가끔은 무슨 배짱인가 '네가 어쩌겠냐 해볼 테면 해봐라.' 인가?라고 생각도 해본다. 아니다. 그렇게 까지 파렴치한 사람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인성이 바닥인 사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