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1

by 독나리

비행기에 오른다. 하늘은 푸르다. 날은 너무나도 맑았다. 그녀의 마음과 대비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짧은 한숨을 뱉어낸다. 집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든 특별한 일이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그녀에게는 오늘의 떠남은 갑작스러운 일이다. 마음은 혼란스러웠고 참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녀를 내몰았다. 멍한 표정으로 그녀는 스튜어데스의 미소를 마주하며 비행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이 어디든 먼 곳으로 홀로 움직이는 것은 그녀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다. 두리번거리며 좌석을 찾아 앉았다. 어쩌다 보니 좌석 예약이 늦어져서 창 쪽이 아니고 복도 쪽 좌석이다. 10여 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지만 그녀는 화장실을 자주 간다거나 하는 움직임이 적은 편이라 어쩌다 타는 비향기의 좌석은 창쪽을 선호한다. 그곳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꼼짝없이 이 상태로 앉아 가야 한다. 조금 후 옆자리에 한 남자가 그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창쪽으로 가도록 했다. 젊은 중년이라 할까 말끔한 모습이다. 여행할 때 옆 자리에 앉는 사람은 중요하다. 그녀는 그저 그 사람이 조용한 사람이기만을 바랬다. 어수선함에 신경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주로에서의 오랜 움직임 끝에 비행기가 이륙했다. 남들보다 귀가 예민한 건지 이상이 있는 건지 이륙할 때의 귀의통증은 심했다. 침을 수없이 넘기며 그 통증을 극복한 후 조금 편안해질 무렵 승무원이 음료 나누어 주느라 수레를 끌고 좁은 통로를 오고 있는 중이었다. 옆에 앉은 그가 묻는다 ''여행가시나 봐요?'' ''네 '' 워낙 사교적이지 못해서 누가 물으면 곧잘 단답형으로 대답하곤 하는 내 버릇이었다. 더 이상 말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사이다를 청해 한잔 마신 후 눈을 감고 있는데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그가 책을 꺼내고 있었다. 힐끔 보니 그녀가 읽은 책 '카프카의 심판'이다. 그녀도 모르게 ''카프카 좋아하시나 봐요'' 말을 걸었다 ''좋아하죠. 세 번째 읽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읽어보셨나 봐요?''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심판'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몰라 그것을 알아내려고 온갖 노력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주인공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카프카는 '성'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지만 그 성에 도착하지 못하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의 한편을 보는 듯하다.


그는 미국에서 세탁소를 한단다. 편찮으신 어머님을 뵙고 미국에 다시 가는 길이란다. 한국에서 S대 상대를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세탁소 하며 살고 있단다. 그에게는 생전의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뵙고 떠나는 길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그녀가 왜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지 모든 걸 잊고 그녀는 그와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시간 동안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시간의 만남이다. 짧은 만남이나 긴 만남이었다. 만남이란 질긴 끈의 이어짐으로 길게 이어질 수도 있게도 되고 또 이런 짧은 지나침의 만남으로 서로 통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신비한 삶이다. 예상치 못 했던 사람을 만나 그녀의 비행기에서의 시간이 짧게 지나갔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치고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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