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 6

by 독나리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친구가 나와 있었다.

우리는 할 얘기가 많았다. 멀리 오래 떨어져 있는 친구지만 그녀의 삶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약간은 알고 있는 친구다. 그 친구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허긴 물은 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공항에서 금문교를 바라보며 태평양의 바다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코발트색의 차가 마음에 든다.


친구의 집은 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시내중심가에 자그만 아파트 3층이다. 직장도 아주 가깝단다. 그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스위스의 유명한 제약회사로 미국지사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약을 판매하는 스위스제약회사다. 방 두 개 중 하나에 그녀의 조그만 네이비색가방이 놓였다. 커튼을 열어보니 버클리로 건너가는 베이브리지가 일부 보이고 푸른 바다가 보인다. 왔구나 그 친구의 이러한 삶은 그녀의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대학졸업 후 같이 유학 가자 우리는 약속했었다. 그 친구는 이루었고 그녀는 주저앉았다.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으로 그것에 따라 운명이 갈라진다는 것은 친구와 그녀의 삶을 보노라면 실감한다. 친구는 홀로 살고 있다. 사실은 그녀는 이곳에 와서 그저 집에 있고 싶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기분이 아니었다. 친구와 가까운 카페에나 드나들며 쉬다가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이리저리 날 끌고 다니려 계획해 놓았다. 허긴 집에 있어서 무엇하겠는가 생각할 틈 없이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닐 모양이다. 그래도 생각은 해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 아파트는 들어오는 입구에 커피를 따라 마실 수 있게 해 놓았다. 신선해 보인다. 서비스차원인가 보다 나가며 커피 한잔을 따라 가지고 나와 차를 탄다. 어디로 가려나 한참을 달리다 보니 나파밸리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와인이라니 난 와인은 모른다. 한없이 넓은 포도밭들이 시원스럽게 펼쳐져있다. 한 와이너리에 들어갔다. 야외에는 앉아서 쉴 곳도 잘 꾸며 놓았다. 띄엄띄엄 사람들이 앉아있다.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광활하다 할 정도로 넓다. 그래서 시원하다. 내부로 들어가니 천장고가 높아 우선 압도당한다. 그곳에 여러 종류의 와인을 테스팅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한편에는 갤러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나게 그림들이 화려한 색감들의 어울림으로 걸려있다. 이것저것 구경거리가 많다. 다른 먹거리도 잘 어울리게 배치해 놓았다. 넓고 넓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포도를 바라보며 이런 풍경을 즐기며 사는 삶은 어떨까 생각에 잠겨본다. 포도를 재배 수확 판매 이런 과정은 무시하고 그저 포도밭에 앉아 즐길 생각만 하는 어리석음이여!


날씨는 얼마나 좋은지 구름이 바로 내 앞에 떨어져 내려앉을 것같이 파란 하늘에 붙어 움직이고 있다. 화이트와인이 얼마나 달착지근하고 맛있는지 우리는 그 한병 사들고 나왔다. 나는 와인이니 뭐니 맛도 잘 모른다. 우리의 소주면 모를까 어찌 된 건지 나는 술이 잘 받는 체질인지 소주 몇 잔을 마셔도 별로 몸에 기별이 안 간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많은 체질인가 보다. 저쪽에서 두부부 와인 시음하면서 무어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고 있다 인생은 즐거워! 주위의 모든 게 갤러리다. 사람들 모두 여기저기 앉아서, 서서 즐긴다.


역시 미국이다. 이렇게 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방법도 있는데 그녀는 어찌 살았나 그냥 한쪽만 보며 살았다. 넓디넓은 세계를 보지 않고 살았다. 다 접고 방향을 틀어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 그냥 바꾸고 싶다.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적극적이 여야 한다. 의지의 빈약함이여 그녀는 생각한다. 제자리로 돌아가서 또 묵묵히 살아갈 자신을 생각해 본다. 친구가 새삼 용감해 보인다. 세상의 통념을 무시하고 묵묵히 혼자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친구가 우러러 보인다. 그곳을 천천히 산책하다 우리는 차를 타고 빠져나왔다. 집에 가는 길에 아웃렛이 있었다. 구경거리 먹거리 잔뜩이다 그녀가 살건 없다. 그저 커피나 한잔 마시고 눈요기하다 떠났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 어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사는 걸까 그녀와는 다른 별세계 사람들 비싸도 너무 비싸다. 50프로 할인값도 너무 비싸다. 쓸데없는 걱정 하며 사람구경도 하면서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신다. 이 세상은 그녀가 보지 못한 그녀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가 많지 그녀는 자기가 아는 조그만 생각과 경험과 환경을 전부인 줄 알고 아귀다툼하고 살아가고 있다. 환경을 확 바꿔버리면 나의 이후의 삶이 또 바뀌는 것 아닐까 바꾸고 싶다.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 그런데 내 주위의 모든 걸 버리고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한국이나 여기 미국이나 가을 단풍의 황홀한 아름다움은 마음을 그냥 애달프게 한다. 어떤 슬픔이 꼭 있지 않아도 그냥 삶자체가 애닯퍼 진다. 아이들만 없다면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아이들만 다 컸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만약에 빠져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결론을 낼 수 없는 문제가 버티고 있는데 난 도망쳐와서 피하고 있다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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