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 7

by 독나리

매일을 그 친구와 나는 헤매고 다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녹초가 되어 잠이 들곤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해변가, 그런 분위기와 어울리는 안정된 삶들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풍요로워 보이는 곳들을 구경하며 며칠을 잘 보냈다. 이제 곧 돌아가야만 하는데 나의 현 상황에 대한 생각은 피하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으나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한번 떠나 보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 소득은 없었다. 애초에 무슨 소득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안 했다. 그저 떠난 것뿐이다. 남은 일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뿐이다. 그 친구도 아무 말이 없었다. 이럴 때 조언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래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두 가지 중 하나다.

헤어지는 방법, 아니면 이 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방법. 인생을 헤쳐나갈 때, 방향판단은 개인의 성품이 좌우하는듯하다. 본래 변화를 싫어하는 나.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도 과감하게 뿌리치고 방향을 돌리지 못하고 주저하곤 하던 숨어있는 내가 다시 나타났다. 나는 주저앉기로 정했다. 나의 생활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냥 살아왔던 대로 그대로의 삶.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살아가자. 나에게서 돈을 뽑아간다거나 생활의 어려움을 준다거나 적어도 그러한 일은 없었으니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가라 하고 나는 내 생을 살아가리라. 그에게 기대는 말자. 허긴 전부터도 그런 기대 없이 살아왔으니 그대로 살아가보자. 여기까지도 말없이 적응하고 살지 않았는가. 커다란 변화로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기대 없이 살아온 삶. 그대로 기대 없이 살아가보자. 사랑이니 뭐니 없이 시작했고 그것 없이도 살아오지 않았는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때 그는 나에게는 커다란 산 같았다. 나이차이도 많았고 내려다보는 듯한 그의 태도는 무언가 위압감이 있었다. 나의 위상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나이가 꽤 된 성인임에도 항상 수동적으로 살아온 나는 무엇을 혼자 결정해 본 적이 없었다. 강한 엄마에 눌려 살아오는 내내 무엇을 혼자 결정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을 결정하는 일인데 그때도 만나라 하면 만나고 나가서 무얼 물어보라면 물어보고는 했었다.


친구는 말없이 안아 주었고 내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올 때와는 반대인 왼쪽에 바다를 두고 공항을 향해 달렸다. 이른 아침 샌프란시스코 바다공기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맑고 달콤했다. 넓게 확 트인 도로는 거침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자유를 잠깐 맛보고 간다. 그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앞도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며칠 전에 가 보았던 소살리토가 생각난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많고, 아기들의 귀여운 옷들,

빨간 노랑파랑 이런 원색 외에 분홍 베이지 등의 파스텔톤의 색상도 빠짐없이 갖추고 있던 소금설탕집도 생각난다. 역시 시각적으로 느꼈던 감각이 머리에 확연히 남는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자 여기 미국에 소살리토에 와서 조그만 소품을 구입 판매하는 것은 어떨까 꿈꾸어본다. 그녀는 이런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좋아하니까. 하룻밤 자고 나면 잊힐 꿈이다.


그리고는 태평양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곳을 떠났다. 또한 그녀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어릴 때 친구. 그 친구의 삶을 응원하며 그곳을 떠났다. 암울하기만 한 내 삶을 향해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리를 찾아 앉은 후 이륙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또 한 번 좌절했다 나의 이 포기하는듯한 결정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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