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

by 독나리

내가 사는 이곳에 얼마 전부터 백일홍이 많이 피기 시작하더니 산책로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개나리 벚꽃으로 시작해서 작은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피고 한여름에는 온 세상이 녹색으로 물든다.

이 계절에는 꽃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올해는 백일홍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아주 넓은 면적이다. 산책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방향이 돌려진다. 역시 아름다움에 대한 유혹은 피할 수 없다.


백일홍 채송화 봉숭아 분꽃 등등 어릴 때 앞마당을 차지하던 옛 꽃들의 이름은 아주 친숙하고 아련한 추억을 소환한다. 빨간 샐비어, 맨드라미도 있다. 그 누군가가 좋아하던 열정의 붉은 칸나도 있다.

올해 갑자기 이곳에 백일홍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되어 산책하는 마음이 새롭다. 분홍, 주홍, 자주, 노랑, 빨강. 색도 다양하지만, 모양도 다양하다. 홑겹도 있고 여러 겹도 있다. 9월부터 피기 시작하더니 10월 들어서니 조금씩 사위어 간다. 그래도 아직은 볼만하다. 그동안 무자비하게 내리꽂는 태양 때문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 곁을 황급히 지나치며 보곤 했는데 오늘은 선선한 날씨 덕분에 자세히 들여다보며 걸었다. 이렇게 다양할 수가. 같은 이름인데 이렇게 다양하다니. 그리고 가운데 노란 수술이 이렇게 예쁠 수가. 어느 시인의 말대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 시인은 이런 말도 했다. '사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은 슬픈 세상을 말하는 말이라 없어져야 한다. 각박한 세상이 아니면 그냥 보아도 예뻐해야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도 하다. 날이 덥든 아니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시선이 머문다.


같은 백일홍이라도 이 꽃은 싱싱함으로 반짝이고 저 꽃은 바로 떨어질 듯 누렇게 사위어 가고 있다. 색감도 표현하는 단순한 색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빨강도 한 종류의 빨강이 아니다. 이곳에 무리 지어 피어 있으니 느껴진다. 한 가지 색으로 뭉뚱그려 표현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다양해서 그 모습을 사진 찍어 친구에게 보내며 다양성에 관해 이야기하니 그 친구 자기 집 아파트 화단에 피어있는 다양한 색의 분꽃 사진을 올린다.


꽃뿐이겠는가. 생물 무생물들이 같은 이름으로 명명되어도 그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인간은 또한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나의 잣대로 상대방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자. 그리고 이해하자. 그러나 내가 얼마나 그 생각대로 실천할 수 있는지 미지수다. 이상하게도 나이 들수록 생각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 마치 내가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처럼 생각하니 말이다.

알 수 없는 인간이다.

20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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