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오전 10시 30분

by 독나리

오랜만에 왔다. 영화상영 기다리는 사이 시간이다. 이곳의 소파는 푸근하다. 우선 질감이 부드러워서 비로드 만지는 느낌이다. 부들부들하다. 그리고 색은 파스텔톤이다. 아주 연한 분홍색 연한 연두색 표현하기 어려운 아스라한 색이다.


앉는 자리는 푹신하다. 절대로 가볍지 않은 고대유럽 왕궁에 온듯한 일인용, 이인용 소파들. 몸이 푹 싸이는 소파다. 싸이는 느낌도 적당하다. 지나치지 않게 살짝. 마음까지 싸임을 받는 듯하다. 널찍하고 편안하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탁자에 놓고 마시노라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렇게 마음의 변화는 분위기가 한몫한다.


저 건너편 젊은 남녀가 보기에도 정답다. 친구들과 어울려 왔을 때는 무심코 흘려 지나쳤을 남녀의 모습이 홀로 한가로이 앉아 있노라니 생각이 여유롭게 퍼져나간다. 휴일도 아닌 이 시간에. 젊은이 둘이. 대학생들인가 보다. 한참 때다. 그들은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변화의 소용돌이가 순간으로 치닫는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갈까 하는 계획이 있을까? 아니 내가 그 나이에 무슨 계획이 있었나?


이상하게도 젊은 시절에 나는 무엇인가 엉뚱한데 관심을 두곤 했다. 생각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준비도 그것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으면서 해 보고 싶은 거 한 번씩 건드려 보길 좋아했다.

사진을 찍노라 또 현상 인화하노라 한동안 몰두했고, 서예도 해 본다고 먹칠 꽤나 하고 다녔다. 기타를 배워야겠다 결심. 학원에 등록 3개월 만에 때려치웠고, 하모니카사서 한참을 불어댔고,


대학졸업즈음에는 기자가 어찌나 매력적으로 보이던지 당시 한국일보 기자시험에 도전도 해보았다. 그리고 떨어졌다. 지나치게 만만하게 보았다. 그리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니 당연한 결과다. 이렇게 조금씩 건드려 보기를 좋아했다. 이걸 무슨 심리라 해야 하나 모르겠다. 그냥 방황이라고 해 두련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직장에 갔는데 누구의 소개였나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곳은 약도매상이었다. 어떻게 그곳에 취직할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약도매상은 나이 든 약사들이나 선택할 그런 곳인데 어떻게 그곳을 갔을까 모르겠다. 적당한 취직자리가 없었나 보다. 사람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었으니 오죽했으랴 어정쩡하게 며칠을 출근하다 보니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모두가 남자 직원들이고 상사직원들 커피 타오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해대곤 했다. 그 시대에는 일반적인 일이었다. 견뎌내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고만두겠다고 말하고 다시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들도 아쉽지 않았으리라 어리바리하게 어쩔 줄 모르는 풋내기 좋아할 수가 없었겠지.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난로 위에서 펄펄 끓고 있는 커다란 노란 양은 주전자. 그 주전자를 힘겹게 들어 올려 커피 타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취직자리를 찾아 도전하는 것이 아니고 오라는 곳은 없나 하고 수동적이었다. 공부 계속하려는 커다란 목적을 가지고 미국으로 가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고,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친구들도 많았다. 친구들 제약회사 약국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갔는데도 나는 뚜렷이 내가 가고 싶다 생각한 곳이 없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관심이 다른 곳에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계획이란 거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이유도 나의 운명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면 난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인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나?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시작할 때의 고만한 위치 고만한 사람으로 똑같이 이리저리 헤매며 이 자리에 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돼버린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때의 고만한 사람으로 인생후반을 지내고 있다. 뭘 커다란 후회할 것이 있지도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나보다. 저 젊은이들은 자기 삶에 대한 계획이 있나 하고. 삶은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고 익숙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젊을 때 어떤 계획을 구체적으로 하며 살아가는 삶은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목표가 없는 청춘은 아깝다.


'한 인간의 지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는 늘 조금 하찮고 비열할 수밖에 없는 형식적 기교와 무장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는 결코 남에게 실질적이고 유효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몇 안 되는 숨은 인재들보다 한 없이 열등하기 때문에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 최고의 영예가 돌아가는 것은 결국 그러한 이유다' ㅡ모비딕에서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그것에 맞서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 하며 포근한 소파에서 커피 한 잔을 다시 마신다. 무료한 시간이다.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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