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멧비둘기 울음소리를 들으러 나온 것만 같다. 내가 앉아 있는 벤치 바로 앞에 있는 아카시아의 굽은 가지에 앉아서 끊임없이 울고 있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앉아 계속 운다. 뭘까.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른 비둘기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그 한 마리 만이 목울대를 움직이며 울고 있다. 그 비둘기 목울대의 움직임까지 잘 보이는 위치에 내가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숲 속에서 멧비둘기의 울음소리는 쉽게 들을 수 있으나 울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다른 새들도 마찬가지다.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서 귀 기울여 듣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노라면 어느새 후루룩 날아가 버리고 만다. 울고 있는 멧비둘기의 모습은 해의 방향으로 인해 여러 색의 털빛 등 몸의 세세한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새의 윤곽만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연못 안에 수련의 조그만 이파리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여름이 깊지 않아서인가 보다.
그리고 그 곁에 개망초와 금계국이 어우러져 피어있다. 하얀 개망초는 5월부터 눈에 띄었는데 지금 물가에서 한참 바람에 흐느적거리며 피어있다. 조그만 하얀색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노란 금계국들이 그 사이사이에 피어 있다. 멀리서 보면 소금 뿌려놓은 곳에 노란색 물감을 군데군데 흘려놓은 듯하다. 올여름에는 금계국이 유난히 눈에 많이 뜨인다. 한 보름 전 경안천에 갔을 때 정말 노란 물감을 부어 놓은 듯 금계국이 다닥다닥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깊이 들어가 그새 속에 한참 빠져있다 나온 적이 있다.
멧비둘기가 날아갔다. 멀리서 희미하게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신 참새 그 외에 박새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더운 여름이 오기 전이라서 인지 기온은 조금 높아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늘진 벤치에 앉아서 즐기기가 딱 좋은 때이다.
내가 몇 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와서 산책할 때 황금 조팝나무를 처음 발견하고는 그 오묘한 색과 모습에 감탄했었는데 그동안 여러 번 홍수를 겪고 나서도 그 자리에 황금 조팝나무가 피어 분홍색으로 빛나고 있다. 죽어버린 후 그 자리에 다시 심은 것인지 아니면 그 모진 일들을 겪으면서도 되살아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간 그 자리에 황금 조팝나무는 피어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못 주위도 마찬가지다. 노란 창포꽃과 수련잎이 완전히 쓸려나간 줄 알았는데 지금 연못 안에는 수련잎들이 빽빽하게 솟아 올라와 있고 그 주위에 노랑꽃창포의 이파리들이 싱싱하게 뻗어 나와 있다. 무늬 비비추의 잎들도 무성하게 뻗어있다. 며칠 전에는 수레국화가 자주색 분홍색 파란색으로 어울려 피어 있어 그 색의 어울림에 발길을 멈춘 채 한참 서 있었던 적이 있다. 화려한 자태의 모란이나 작약은 이제 그들의 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자연은 계절마다 변화하는 그들의 존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어김없이 확실하게. 자연으로 인해 나는 때때로 힘이 나고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기도 한다. 매해 자연은 조금 더 새로워지고 조금 더 성장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나도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삶인 듯 보이나, 알지 못하게 내부에서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삶이겠지. 일 년 전보다 성숙함이 보태지고 있겠지. 똑같은 생활의 반복은 아니겠지. 그러니 이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겠다.
얼마 전 이승우 씨의 '생의 이면'이라는 책을 읽었다. 주인공은 비참하다고 말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지 못한 주인공은 사랑을 하는 것도 서투를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사람은 계속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열심히 살아봐야 하지 않나. 조금 더 성숙하게 변한 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202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