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장에서 한 가지 일을 두고도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저렇게 말한다. 우리는 옳고 그른 걸 판단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친구라는 이름만 있을 뿐이다. 순수한 이름, 지지 않으려는 이름, 자기를 높이려는 이름, 나를 나타내려는 이름. 다 좋다. 다 정겹다. 앞에 놓인 음식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양식인 듯 맛있게 먹는다. 그러고는 웃고 떠든다. 얼마나 지속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겨 멈춰질 수도 있고 아니면 각자 나름의 자의에 의해 멈춰질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운명을 그저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운명이란 것에 믿음이 기운다.
오늘 친구 몇몇이 아득한 곳을 혼자 떠돌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래도 아직은 그 친구가 우리와 같이 대화가 가능함에 그 누군가에게 감사드린다. 점점 병이 깊어지면 어느 날부터인가 대화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마주하고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
한편 이상하게도 착하디 착한 친구에게 시련이 주어진다. 최근 들어서 내 주위에 부쩍 그러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너무도 가혹하게 본인이 아니라 그 사랑스러운 자식들에게 시련을 내린다. 그 친구의 밝은 모습이 가슴에 꽂혀서 가시같이 깔끌 거 린다.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고는 아무 말 못 하고 딴소리만 지껄이다 끊는다. 이러며 살아간다. 참 위로라는 것이 힘든 그 친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 편안하자고 하는 짓 같다. 그래도 그것도 상대에게 조금은 유효하겠지 내 마음을 위로해 본다.
우리나라 고유의 장례문화를 전시해 놓은 곳에서 상여의 아름다운 장식에 시선이 머문 적이 있다. 그 복잡한 장식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는 말을 듣는다. 상여에 붙어있는 여러 가지의 나무꼭두의 모양은 광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시는 분들의 영혼을 외롭지 않도록 해 주기 위한 것이란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특히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이라니. 가시는 분들이 웃으며 가실 것도 같다.
그렇지.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을 각자 이렇게 헤매다 옛날에는 이런 꼭두들의 장난스러움에 위안받으며 떠나갔고 지금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각자가 자리매김하며 떠나고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신이 하시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지금은 누구나 인간이면 신을 믿던 안 믿던 인생살이에 때때로 의문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때때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때때로라는 표현은 어쩌다 갑자기 정신을 집중할 때의 일이다.
202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