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by 독나리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 친구는 가톨릭 교인이다. 나와 또 다른 친구는 종교가 없다. 나는 불교, 가톨릭, 개신교 이 세 가지 종교를 전전하다가 개신교에 안착했었다. 가톨릭을 믿을 때는 세례를 받고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개신교를 믿으며 교회에 다닐 때는 성경 공부에 빠져 열심히 공부했다. 물론 여기에서도 세례를 받았다. 불교는 믿었다기보다 어릴 때 엄마 손 잡고 때 되면 절을 다니곤 해서 나에겐 익숙했다. 결혼 후에는 살던 곳 가까이에 포교원이 있어 유명한 스님, 동국대 교수님들의 강의가 있어 그것 또한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이 이론을 열심히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공부할수록 뭐가 뭔지 모르겠고 불교는 어렵기만 하다. 그렇다고 내가 종교 이론을 많이 알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겉핥기식의 공부였다. 교회에 몇 년 다니다 멀리 이사 오니 그곳까지 가지 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대단한 믿음이 있지도 않은지라 가까이 집에서 보이는 교회만도 3곳이 있건만 나가지 않는다.


내 나이대 사람들은 보통 종교가 있게 마련이다. 가족 전통의 종교가 있거나 친구에게의 이끌림이거나 나이 들어 갈수록 외로움이 무서워 또는 죽음의 의식들을 많이 보게 되어서 어느 한 종교에 안착하기 마련이다. 보통 친척이 많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더욱 그렇지 않을까? 나의 추측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은 성당도 교회도 절도 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세례는 양쪽에서 다 받았다. 믿음이라기보다 이제 와서 보니 지식적인 것에의 목마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우선 믿고 보자가 되지 않는다.


가톨릭 믿는 친구의 말이다. 극한의 고통에 빠졌을 때 친구가 준 성경에 있는 어떤 한 구절이 가슴에 꽉 박히는 것 같았단다. 그때부터 신앙이 시작되었단다. 그런데 그녀는 성당을 나가거나 교우들과 친교를 맺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녀의 말대로 고독한 신자다.


그 반대의 사례도 본 적이 있다. 열심히 믿던 사람이 어느 날 큰 일을 당하고, 도대체 신이 있기는 한가 울부짖더니 신을 부정하며 종교에서 멀어진 것이다.


나는 어쩌면 외롭지 않고 싶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사람인가 보다. 종교에 푹 빠지지를 않는다. 어찌 무작정 믿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우선 따지기 시작한다. 이러다 보니 소속감의 부재로 가끔 외롭기도 하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바에 의하면 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말하곤 한다. 종교를 무조건 믿기 시작하라고 처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계속 다니다 보면 인정하게 되고 수긍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그러나 내가 본보기가 되지 않는 데 아이들이 따라 하겠는가?


또 한 친구는 이론이 아주 빠삭해서 그녀가 믿을 수 없는 이유를 말로 조리 있게 표현한다. 나는 그저 옆에서 그렇지 마저 그래서 종교에 빠지지를 못한다고 맞장구만 친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는 중 자신은 과학도 믿을 수 없단다. 몇십 년 동안 실험을 거듭해 확실하게 입증되었다고 하는 사실들이 지금은 틀렸다고 하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허긴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의 기준으로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것은 적어도 지금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과학과 종교를 믿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해 본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이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과학자들이 종교에 많이 귀의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종교에 대해 죽음에 대해 한참 떠들었다. 결론은 없다. 마음의 일이니 각자 설득되지 않은 채 자기 생각을 유지하며 일어난다. 각자의 생각을 이론으로 명확하게 증명하지도 못한 어설픈 모임이었으나 그저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만났다는 느낌의 흐뭇한 시간이었다.

2024/ 08/15

작가의 이전글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