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한 어느 날

by 독나리

막연한 불안감으로 안정이 되지 않고 허둥댄다. 외출했다 돌아온 뒤 정신 놓고 텔레비전에 빠져 멍하니 누워있다. 화들짝 일어나 집에 있던 옷 그대로 위에 파커와 모자만 뒤집어쓰고 마트로 간다. 달달한 무엇으로라도 몸을 채워야 할 것 같아 밖으로 나온 것이다. 별로 춥지는 않은데 12시쯤 진눈깨비가 갑자기 쏟아져서 외출했다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그쳤다. 진눈깨비는 온 세상을 지저분하게 질척거리게 만들어버렸다. 진눈깨비 같은 사람은 절대로 되지 말아야지. 포슬포슬한 하얀 눈 이 있고 감상에 젖게 만드는 보슬보슬 내리는 비도 있는데 그것이 섞인 이런 진눈깨비란 딱 질색이다.


내가 오가는 이 마트는 나에게 딱 맞는 마트다. 있을 건 다 있고 선택해서 가져다 놓은 거 같은 느낌이 들도록 물건들이 마음에 든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걸 잘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이 마트다.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어 서성거리게 될 때 모자와 겉옷만 걸치고 2,3분 만에 이곳에 와서 달달한 아이스크림이나 쵸코렛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마트가 있다. 결코 작지 않은 이마트.


이곳에서는 가끔 지정된 신용카드로 살 경우에 식료품가격이 많이 다운된다. 오늘은 파 5980원이 2900원이다 고구마가 두 박스에 9900원이다. 정상가는 13200원. 차이가 많이 난다. 그렇다고 없는 카드 만들기는 싫다. 미처 알지 못하고 카트에 고구마를 넣었다 꺼내놓고 말았다. 정가가 13200원이라면 샀을 것이다. 그런데 9900원에 살 수 있는데 지정한 카드가 없어서 13200원에 사게 되는 건 아주 큰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의 심리라는 거 참 모순되기는 하다. 그러면 그 카드로 싸게 살 수 있는 기간이 끝나고 정상가 13200원일 때 산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가 말이다. 웃지 않을 수가... 여하간 오늘 고구마는 못 샀다. 아니 안 샀다. 이유가 비합리적이던 어떻든 간에... 살아가는데 기분은 중요하다. 하하.

그리고 나의 목표는 과자, 쵸코렛이었다.

쵸코렛 한 봉지 과자도 한 봉지 만 사 가지고 나왔다.


며칠 전 조금은 날이 푸근한 날이었다. 탄천에 있는 자그만 호수에는 검은색의 물닭들 이십여 마리가 호수 안팎에서 들락날락하며 즐기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호수는 눈부시게 반짝이고 물닭들이 무리 지어 즐기는 장난으로 물의 파문이 여기저기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한가롭고 따스한 겨울 오후 호수에서 즐기고 있는 물닭들의 모습들. 마음까지 푸근해졌다. 요즈음은 그 많던 오리들이 물닭들에게 밀려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물닭들 몇 마리는 밖으로 나와 풀밖에서 노닌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평화롭게 거닐다 내가 다가가니 폴짝 뛰어 호수로 도망친다.


최근 음악 콩쿠르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음악으로 자연을 표현할 수 있는 작곡가들은 이런 광경을 어떻게 표현할까. 자연에서 음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 자연의 선율을 들을 수 있는 음악가들. 그들의 많은 고뇌로 우리는 좋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이겠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모든 예술은 기술적인 것만을 연마해서는 진정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음악도 미술도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더 깊은 사색을 하는 사람이 좋은 음악, 다른 사람들과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은 참인 것 같다.


역시 쵸코렛과 과자는 기분을 돋아준다.

좋아하는 LP에 바늘을 올려놓고 평화롭게 노닐던 물닭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커피에 과자를 찍어먹는다. 먹는 것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함은 틀림없는 말이다.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20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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